빌립보 교회

신명기 6장 4절 "이스라엘아 들으라"의 말씀은 신앙의 부모가 자녀에게 자자손손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자녀는 이 말씀을 듣고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순종)는 성경적 자녀교육의 대명사이며 축복의 말씀입니다. 신약의 중심 주제가 '복음'이라면 구약의 중심 주제는 '기독교교육', '신앙교육' 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구원에 이르는 '복음'과 함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기독교 교육(쉐마교육)' 모두 필요합니다.

랄프 윈터 교수의 4단계 전도 구분에 따르면, 땅끝 선교는 언어 문화적 측면에서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전도하는 것이라 합니다. 따라서 미주 한인 가정에서 부모가 문화와 언어가 다른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선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교육과 신앙전수" 이제 시작하십시오.
유능하게 키우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부모님께 예를 갖출줄 아는 자녀로 키우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인복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작성일 : 15-06-01 07:40
가정신앙화(22) – 빌립의 가정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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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신앙화(22) – 빌립의 가정 



‘다음 세대’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표현은 ‘내 자녀’입니다. ‘내 자녀’를 빼놓고 ‘다음 세대’를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막연한 논의로

그칠 가능성이 많습니다.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것은 모든 신앙 부모님의 기도제목입니다. 부모님의 신앙이 좋고, 자녀들

의 신앙이 더욱 좋은 그런 가정, 그런 가문을 이루고 싶은 마음으로 오늘은 빌립의 가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집사 빌립의 집이 머물러 있던 곳은 가이사랴 입니다. 가이사랴는 로마의 제국 통치를 받는 유대 지방의 정치적 수도로 총독이 거주

하고 있던 주요한 도시였습니다. 이곳은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를 기념한

다는 의미로 가라사랴로 불리워졌습니다. 이렇듯 가아사랴 지역은 빌립의 신앙이 좋고 그의 4명의 딸이 성령충만하여 예언할 수 있

을 만큼 신앙적으로 좋은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내용을 소개

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와 같은 신앙 고백이 더욱 귀감이 되는 이유는 그 장소가 황제의 도시라고 일컫어졌던 가이사랴이기

때문입니다. 곳곳에 로마황제의 신상이 세워져 있고, 로마 시민권자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당시 신은 현존하는 로마 황제로 여겼습

니다. 그런 배경 하에 참 신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평양 한 복판에서 그것도

김일성, 김정일의 신상을 배경으로 한 고백과 같습니다. 



빌립은 초대교회 7집사중 한 명으로 사도행전 6장에는 스데반 다음으로 소개됩니다. 그는 주의 성령에 이끌리어 사마리아를 비롯

해 여러 곳에 복음을 전한 뒤(행8:5-8, 26-40) 가이사랴에 정착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이후 빌립은 집사보다는 전도자 빌립으로

소개됩니다. 당시 전도자들의 임무는 이 지역 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여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는데 빌립도 가이사랴 지역을 개척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빌립의 복음에 대한 헌신과 열정은 점점 성숙해 졌습니

다. 단지 열정의 사람만은 아니었습니다.



빌립의 신앙적 성숙은 바울과의 동역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빌립은 스데반의 동료였고(행6:5)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는

데 가편 투표를 던지고 돌 던지는 사람들의 옷을 맡아 보관한 자로서 스데반의 죽음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사람이었습니다(행7:58

-8:1). 바울과 빌립은 시간이 지났다 하더라도 껄끄러울 수 밖에 없는 관계입니다. 이 둘이 약 20년이 지난 뒤 이 둘은 동역자로 만

납니다. 빌립은 그런 바울에게 자기의 집을 숙소로 허락해 주기까지 합니다. 오고가다 인사하고 안부묻는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가정을 바울의 숙소로 사용케 합니다. 동료 스데반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복음이었기에 사랑으로 용서하고 수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행8:5-8), 에디오피아 재정 담당 내시를 개종시키며(행8:26-39), 아소도와 가이사랴 사이에

있는 모든 해안 도시들에 복음을 전하면서(행8:40)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한 빌립이었기에 사울이 바울이 되어 이방인을 위해

열심히 복음을 전파한다는 사실에 미움보다는 긍휼히 여김의 마음이 컸습니다. 초대교회를 위해 사역할 동료를 죽음에 내몬 당사자

를 받아들임으로 빌립의 믿음의 수용성과 성숙함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빌립과 그의 가정은 이방인과 바울에게 뿐 아니라 복음서 기자중 한 명인 누가에게도 헌신적이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

되어 가이사랴에 호송되어 투옥되어 있었을 때 누가도 가이사랴에 머무르게 되는데 누가 역시 빌립의 가정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러

면서 더욱 친밀하게 빌립의 가족과 교류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며 예수님의 생애와 예루살렘에

서부터 시작된 교회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빌립과 그의 가정으로부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집필할 많은 자료들을 얻게

됩니다. 빌립의 4명의 딸은 모두가 예언하는 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미래의 사건을 예언하는 자가 아니라 바울이

다른 어떤 은사보다 높게 평가한 예언의 은사(고전14:1-5)를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가 개척한 교회를 돕는 사역자로

서 여선지자의 역할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방인에게 뿐 아니라 이웃과 복음 증거자들에게까지 그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온 가족 모두가 신앙이 좋은 가정을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하다가 한 사람의 지나친 신앙형태로 다른 가족들은 피해를 보

거나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가정이 많습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교회 여전도사님을 위해 가정을 사택으로 허락하신 적이 있으셨

습니다. 집이 사택이다보니 교회 성도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전도사님을 모신다는 것은 온 성도님들을 모시는 것과 부분

적으로 같습니다. 그럴 경우 가족 모두의 이해와 동의를 떠나 모두의 적극적 섬김과 희생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가정 안에

는 전도사님의 영적인 감흥이 늘 가득했습니다. 전도사님께서 매일같이 찬양을 읊조리곤 하셨는데 지금까지도 귓전에 쟁쟁하게 들

려옵니다.



빌립은 사람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당시 짐승처럼 취급받던 이방인들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겨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자신

의 집에 유숙케 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원수와 같은 바울을 마음으로 뿐 아니라 가정을 숙소로 허락하여 유숙하게 하며 함께 생활

하였습니다. 누가를 비롯하여 수많은 나그네를 영접합니다. 온 가족의 성숙된 신앙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빌립의 신앙이

가족의 신앙이요, 가족의 신앙은 누가에 의해 성경에 기록되어져 오늘날 우리들 가정에 귀감이 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