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신명기 6장 4절 "이스라엘아 들으라"의 말씀은 신앙의 부모가 자녀에게 자자손손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자녀는 이 말씀을 듣고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순종)는 성경적 자녀교육의 대명사이며 축복의 말씀입니다. 신약의 중심 주제가 '복음'이라면 구약의 중심 주제는 '기독교교육', '신앙교육' 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구원에 이르는 '복음'과 함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기독교 교육(쉐마교육)' 모두 필요합니다.

랄프 윈터 교수의 4단계 전도 구분에 따르면, 땅끝 선교는 언어 문화적 측면에서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전도하는 것이라 합니다. 따라서 미주 한인 가정에서 부모가 문화와 언어가 다른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선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교육과 신앙전수" 이제 시작하십시오.
유능하게 키우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부모님께 예를 갖출줄 아는 자녀로 키우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인복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작성일 : 15-05-10 08:53
가정신앙화(20) - 모르드개와 에스더 가정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720  
가정 신앙화(20) – 모르드개와 에스더 가정


빌립보 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 이름은 ‘남강 한글학교’입니다. 남강 이승훈 장로님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민족정신을 계승하

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제침략과 6,25전쟁 등으로 힘겨움에 처한 시절 미국과 영국, 독일과 호주에서 많은 선교사님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국 땅에 밟을 내디뎠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여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은 물론 자녀와 아내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대한국민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 감당함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가난과 질병,

문화적 이질감과 언어적 장벽, 물질의 한계를 넘어가며 대한민국을 사랑했습니다. 스스로 한복을 입고, 이름을 개명하고, 내가 죽거

든 한국 땅에 묻게 해 달라고 할 만큼 사랑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민족정신이 높은 우리 민족에게 이와 같은 선교사님들의 희생은

그리스도인들의 민족애에 불을 집혔습니다. 



1907년 2월, 일본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고자 제공한 차관 1300만원을 국민들이 갚고자 국채보상 운동이 펼쳐집니다.

종국적으로는 일본의 방해와 상위계층과 부자들의 참여 의지 부족으로 지속되지 못하고 실패됐지만 우리 국민이 얼마나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운동이었습니다.


국채보상운동 취지서의 일부 발췌 내용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정신을 새로이 하고 충의를 떨칠 때이니, 국채 1천 3백만원은 우리나라의 존망에 직결된 것입니다. 이것을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함은 필연적인 사실이나, 지금 국고에서는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으며 만일 나라가 못 갚는

다면 그때는 이미 3천리 강토는 내 나라 내 민족의 소유가 못 될 것입니다. 국토가 한 번 없어진다면 다시는 찾을 길이 없을 뿐만 아

니라, 어찌 베트남 등의 나라와 같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일반 인민들은 의무라는 점에서 보더라도 이 국채를 모르겠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갚을 길이 있으니 수고롭지 않고 손해보지 않고 재물 모으는 방법이 있습니다. 2천만 인민들이

3개월 동안 흡연을 금지하고, 그 대금으로 한 사람에게 매달 20전씩 거둔다면 1천 3백만원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 액수

가 다 차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응당 자원해서 일원, 십원, 백원, 천원을 특별 출연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2월 21일자]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머리의 비녀를 뽑고, 손가락의 가락지를 빼고, 남자들은 담배와 술을 끊어 마련된 돈으로 국채를 갚으려

했습니다. 온 국민의 힘으로 국채를 갚으려 했던 사상 유례없는 경제적 구국 운동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민족의 어른들은 나라를 위

한 일에 자산을 내놓는 일들을 통해 크고 작은 나라 살리기 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남강 이승훈 장로님은 사재를 털어 오산학교를

세웠습니다. 민족의 지도자를 양성해야 해방 이후 민족의 혼돈을 막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민족대표가 되어 달라는 부탁

을 받고는 ‘이제 죽을 자리를 찾았다며’ 흔쾌히 승낙하셨습니다. 이렇듯 믿음의 선조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에 주저함이 없었습

니다.



역사를 보면, 자신의 평안은 물론 가정의 평안까지도 희생한 채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때에 따라 민족

의 운명이 더 중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민족이 있고 나서야 가정이 있고 개인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산 사람이 바로 모르드개와 에스더입니다.



모르드개는 아비하일이라는 삼촌의 딸인 에스더를 자기 딸과 같이 양육하였습니다(에2:7). 에스더는 비록 부모님이 없었지만 용모

가 곱고 아리따웠습니다. 시간이 지나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로가 와스디 왕후를 폐위하고 새로운 왕후를 찾는다는 조서를 내린

후 모르드개의 천거로 에스더가 왕후가 됩니다. 고아나 다름없는 에스더가 그 엄청난 대국 페르시아의 왕후가 된 것입니다. 딸과

같은 조카가 왕후가 됐음에도 모르드개는 이를 이용해 자신의 부귀영화를 구가하지 않고 오히려 겸손히 궁궐 문지기를 자처합니다.

가족을 이용하여 권력의 욕망에 자신을 재물 삼지 않으려는 모르드개를 볼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궁전의 문지기로 일하면서 왕의 두 내시가 왕을 시해할 음모를 짜고 있음을 알고는 에스더에게 이 사실을 알려 결국 왕

을 살해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와 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의 자리는 여전히 궁전 문지기였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않아 모르드개와 에스더에게 위기가 다가옵니다. 왕의 신하 하만이 유대민족을 말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왕의 절대

적 신임을 받고 있던 하만은 아달월 십삼일에 전국적으로 유대인 학살을 실행하려 했습니다.



모르드개가 이 소식을 접한 뒤에 대궐 문 밖으로 나가서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는 대성 통곡을 한 후 에스더와 이 문제

에 대해 논의를 합니다. 왕후를 통해 어떤 사사로운 유익도 얻고자 하지 않았던 모르드개는 민족 앞날이 풍전등화 같음을 알리고는

왕후 에스더의 역할을 부탁합니다. 왕께 나아가 하만의 모략을 알려야 하지만 왕이 부르기 전에는 누구도 왕 앞에 나아갈 수 없기에

목숨을 걸어야 할 상황을 직면하게 된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기도 부탁을 합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

게 나아 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결국, 왕후 에스더는 기도 후에 잔치를 열어 왕과 신하 하만을 초대하는 지혜를 발하여 하만의 음모를 왕 앞에서 밝혀내고 온 유대

민족을 하만의 모략에서 구원하게 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대에 매달려 죽음을 맞게 되고, 모르드개

는 왕을 죽음에서 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하만이 가졌던 자리를 차지하고, 에스더는 하만의 집을 받게 됩니다. 



에스더의 민족 사랑하는 마음은 ‘죽으면 죽으리이다’(4:16)는 고백과 더불어 ‘내가 어찌 내 민족이 화 당함을 차마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차마 보리이까’(8:6)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자신보다 민족의 아픔을 더 생각하고 헌신했던 한 가정

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며 지혜롭게 일을 풀어간 에스더와 모르드개.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과 이런 가정을 통해서 조국 대한민국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