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신명기 6장 4절 "이스라엘아 들으라"의 말씀은 신앙의 부모가 자녀에게 자자손손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자녀는 이 말씀을 듣고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순종)는 성경적 자녀교육의 대명사이며 축복의 말씀입니다. 신약의 중심 주제가 '복음'이라면 구약의 중심 주제는 '기독교교육', '신앙교육' 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구원에 이르는 '복음'과 함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기독교 교육(쉐마교육)' 모두 필요합니다.

랄프 윈터 교수의 4단계 전도 구분에 따르면, 땅끝 선교는 언어 문화적 측면에서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전도하는 것이라 합니다. 따라서 미주 한인 가정에서 부모가 문화와 언어가 다른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선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교육과 신앙전수" 이제 시작하십시오.
유능하게 키우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부모님께 예를 갖출줄 아는 자녀로 키우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인복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작성일 : 15-05-05 11:20
가정신앙화(19) - 나오미의 가정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야기]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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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신앙화(19) - 나오미의 가정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야기]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남편들의 신부 선택의 기준이 부모님을 모실 것인가에서 재테크를 잘하는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시부모님들이 섭섭했다고 합니다. 애써 공부시켜 키워놨더니 자기 살 궁리만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부모님들도 노후에

간섭받기 불편해 하시고, 며느리가 무능하면 아들 고생한다 생각되어 부모 공경도 공경이지만 직장에서 돈 잘 버는 며느리를 원한다

고 합니다. 부모 공경 잘하는 며느리 보다 돈 잘 버는 며느리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둘 다의 조건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시어

머니와 며느리간의 갈등으로 힘겹게 사느니 따로 떨어져서 서로 간섭받지 않고, 또한 서로 잘 살아서 서로에게 손 벌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최선 보다는 차선책인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민 생활이 짧아서 일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가슴 훈훈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들은 이야기들 중 대부분

은 가족 관계의 갈등과 이로 인한 반목들입니다. ‘이민’에 대해 잘못 이해하면 언뜻 환상을 가지기 쉽습니다. 신문이나 TV에 보도되

는 ‘성공사례’만을 보기 때문에 그럴 것 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민은 실패의 경우가 많습니다. 자식 교육을 망치기도 하고, 타향

살이로 인한 질병이나 자살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주노동의 경우도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습니다. 가정이 파탄에 이르고 자녀들은 탈

선의 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희망이 절망이 되고, 기회가 무력함으로 바뀌게 되는 경우가 성공의 경우보다 더 높습니다.



이와 같은 힘겨운 생활 터전에서 나 혼자 살아남기도 힘든데 효도를 생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광야

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과 같은 귀감적 이야기를 소개해 줍니다. 바로 나오미 가정 이야기입니다. 남편 엘리멜렉과 함께 고향 베들

레헴의 기근을 피해 모압 지방으로 이민을 떠납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이민 생활 가운데 남편이 죽게 됩니다. 급한 마음에 나오

미는 서둘러 두 아들을 결혼시킵니다. 유대인은 유대인과 결혼한다는 전통과 신앙을 등지고 어차피 모압 땅에서 살기로 했으니 모

압 여인을 며느리로 삼습니다. 바로 룻과 오르바입니다. 그런데 결혼 10년 쯤 되어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죽습니다. 기근을 피해

희망을 갖고 찾아 온 땅이 가족의 무덤이 되고 만 것입니다. 처량한 신세 앞에 나오미는 자신을 “마라(쓰다)”라고 불러 달라고, 고향

사람들에게 말합니다(룻1:20).



많은 이민 생활에 실패를 경험한 분들의 속마음은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갈까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나오미도 결국 그와 같은 마음

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습니다. 때마침 고향은 기근이 지나고 풍년이라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기전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앉혀놓고 자신을 따르지 말고 각자의 행복을 찾아 떠날 것을 눈물로 당부합니다. 자신의 무능과

노년의 나이가 젊디젊은 며느리의 삶에 패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두 며느리는 통곡을 합니다. 절대로 어머니를 떠

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진심이었습니다. 두 며느리는 그렇게 어머니를 존경했습니다. 다시금 시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결국 오

르바는 길을 되돌아 가고, 룻만 따르게 됩니다. 선택의 결과는 달랐지만 동기와 이유는 같았습니다. 며느리의 시어머님에 대한 효심

이었습니다. 짐이 되어 드리지 말아야겠다는 효심과 어머님의 뜻을 받들겠다는 동기였습니다.



가정 안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진행하던 중에 동기와 이유가 같은데 선택의 결과가 다를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름

을 틀림으로 여길 때가 많은데 좀 더 넓은 아량을 갖고 가족 서로를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시어머니로서 10년 이상을 자기 아들과

함께 생활했던 며느리를 다시금 떠내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들과의 추억을 안고 가족이라는 끈을 풀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노년의 자신보다 며느리들의 행복을 먼저 생각합니다. 자신을 생각하면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는

상황에서 며느리라도 있어야 되는 상황이지만 나오미는 자신의 편리를 위해 며느리의 행복을 희생시킬 수 없었습니다. 어느 며느리

가 이와 같은 시어머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으며 따른다 하지 않겠습니까.



룻의 시어머니 사랑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

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

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하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

게 말하기를 그치니라”(룻1:16-18).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의 사랑 앞에 고집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못된 고집이 아니라 선한 고집을 부립니다. 사랑하는 일에 서로

에게지지 않겠다고 오기를 부리는 것 같습니다. 결국 시어머니가 져줍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나오미는 또 다른 방법으로 며느리의

행복을 준비하기로 작정합니다. 자신도 질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제 나오미의 삶은 자신을 위해 산다기 보다 며느리를 위해서 사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남은 생애를 며느리를 위해 겁니다. 시어머니가 스스로 며느리의 재혼을 준비합니다. 남편인 엘리멜렉의 친척

중 한명인 보아스와 결혼 하도록 모든 수고와 역할을 아끼지 않습니다. 과부가 된 자기의 며느리를 자기 손으로 재가를 시킵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입니다. 오히려 그 길을 막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해 보입니다. 노년에 의지할 곳이 없는 시어머니가 마치 자기

가 죽기 전에 꼭 이루어야 눈을 편히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면서 성취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가족의 원시적 해석은 함께 밥을 먹는 공동체입니다. 원시 시대 뿐 아니라 농경과 목축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시대만 해도 서로 자신

의 몫을 양보해서 모두의 배고픔과 서로의 필요를 채워줌으로 행복하게 살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도리를 쫓지 않고 편리

를,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을 추구하다 보니 가족 안에서 조차 공동의 행복이라는 목적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결코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만났지만 서로를 위해 살기로 작정하고 만난 부부 이상의 복된 관계를 보여주

고 있습니다. 죽고 못 사는 부부여도 서로를 도구로 여기는 순간 무너지고, 비록 힘겨운 관계로 설정된 만남이라도 서로를 위한 도구

를 자신을 낮춘다면 그 관계가 비록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라도 세워지고 행복하게 됩니다. 나오미와 룻의 가정 이야기가 우리에

게 이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