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신명기 6장 4절 "이스라엘아 들으라"의 말씀은 신앙의 부모가 자녀에게 자자손손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자녀는 이 말씀을 듣고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순종)는 성경적 자녀교육의 대명사이며 축복의 말씀입니다. 신약의 중심 주제가 '복음'이라면 구약의 중심 주제는 '기독교교육', '신앙교육' 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구원에 이르는 '복음'과 함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기독교 교육(쉐마교육)' 모두 필요합니다.

랄프 윈터 교수의 4단계 전도 구분에 따르면, 땅끝 선교는 언어 문화적 측면에서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전도하는 것이라 합니다. 따라서 미주 한인 가정에서 부모가 문화와 언어가 다른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선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교육과 신앙전수" 이제 시작하십시오.
유능하게 키우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부모님께 예를 갖출줄 아는 자녀로 키우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인복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작성일 : 15-04-26 13:13
가정신앙화(18) - 제사장 엘리의 가정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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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신앙화(18) - 제사장 엘리의 가정


지난 시간 우리는 한나의 가정에서 사무엘이라는 민족의 영적 지도자가 어떤 배경을 하에 태어나게 됐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사무엘이 자랐던 엘리 제사장의 가정을 살펴보려 합니다. 당시 제사장은 기록된 레위기의 말씀과 같이 가문에 따라 승계되던 때였습

니다. 엘리도 그렇게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은 홉니와 비느하스였고 이들은 사무엘과 함께 자라게 됩니다. 한 가

정에서 자랐지만 이들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상반되었습니다. 먼저 홉니와 비느하스에 대한 성경의 평가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2:12),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

라”(삼상2:17). 이에 반해 사무엘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그 아이는 제사장 엘이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삼상2:11),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삼상2:18).



자녀들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부모님들에 의해 결정되어 집니다. 같은 가정에서 자라지만 부모님이 달랐고, 부모님의 역할과 교육

도 달랐습니다. 먼저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교육과 신앙의 본에 따라 자랍니다.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만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삼상2:19). 한나는 그의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 경외심의 마음으로 아들 사무엘을 가르치고 그 마음을 전합니다.



예로부터 예배를 드리는 자의 복장은 단정해야 함을 부모님들은 가르쳤습니다. 새 옷이 아닌 깨끗한 옷을 입을 것을 가르쳤습니다.

한나는 매년 제사 때마다 아들에게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입히면서 그 교육을 시켰습니다. “얘야,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는 정결한

옷을 입어야 하고, 규범에 맞게 입어야 한단다”라고 말입니다. 예배는 예배를 드리기 위한 준비과정에서부터 결정 됩니다. 옷맵시부

터 준비되지 않은 예배는 정성을 다한 예배라 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가는 그의 부모 엘가나와 한나와 같이

사무엘 역시 여호와 앞에서 경외심을 갖고 자라나게 됩니다(삼상2:21). 그렇게 자란 사무엘은 점점 자라 여호와 뿐 아니라 사람들

에게 더욱 은총을 받는 자녀가 됩니다(삼상2;26).



반면,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진노를 면치 못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승계되는 제사장 직을

가지고 하나님의 제물을 탐합니다.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왕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삼상2:15). 그들은 종들을 시켜서 육축으로 드

리는 제사의 절차를 무시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의 권한으로 하나님께 드리기도 전에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서 강탈합니다.

종교적으로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 이들의 범죄는 멈추지 않습니다. 이들의 악행은 회막 문에서 수종 들던 여인들과 동침하는 추태

까지 범하게 됩니다(삼상2:22). 이들은 금전욕, 성욕, 명예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엘리 제사장의 책임을 묻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자녀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자리에까지 서게 되었는

가? 사무엘상 2장 29절은 아주 명료하게 답합니다.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엘리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녀들의 요구

에 무게를 두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는 부모가 자녀 앞에 자녀를 위한 권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의 직책이 제사장이라면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나이 많은 아버지 엘리가 아들들의 악행을 듣고 말립니다. 하지만 책망하지 않습

니다. 책망을 해도 자녀들은 이를 우습게 여기게 됩니다.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삼상2:25).



하나님의 말씀은 명백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하나님께서는 가문도 직책도 보지 않으십니다. 당사자의 마음과 행동을 보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자는 엘리와 그의 자녀에게 심판

을 예언을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고,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언

약궤를 빼앗기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게 되고 맙니다. 구십 팔세의 엘리 제사장은 그 소식에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신앙은 유전되지 않습니다. 신앙은 전수와 계승되어지며 이것은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광야 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에

게 하나님께서 거듭 당부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말씀을 가르치도록 하셨습니다. “곧 너와 네 아

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신6:

2),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6:4-9). 한나

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부지런히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쳤지만 엘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은 말로만 전수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로 전수하려는 노력은 자녀들의 저항감만을 불러옵니다. 신앙 교육은 부모님의 삶의 스

타일을 통해서 저절로 습득되어 지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지기에 힘든 멍에이지만 이보다 더 복된 삶이 없고, 이보다 더 자녀들을 복

되게 할 방법도 없습니다. 여기에 신앙의 가문과 패망의 가문이 결정되어 집니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자녀들의 행동들로 무

조건 부모님들을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한나와 같은 부모님 아래에서도 홉니와 비느하스 같은 자녀의 모습이 있을 수도 있

습니다. 이와 같은 가정과 부모님의 아픔에 우리는 같은 부모의 심정으로 눈물의 기도에 동참하며 함께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눈물

로 기도하고, 진정으로 삶의 모범을 보인다면 그 자녀들은 언젠가는 꼭 돌아아게 됩니다.



지금 돌아봐야 할 것은 나의 부모 상입니다. 나는 지금 엘리와 같이 눈물도 삶의 모범도 없는 부모는 아닌가?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사랑하지도 않고 오직 자녀에게만 집착해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부모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