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나는 가정의 제사장 [고린도전서 7장 13-16절]

작성일 : 17-05-1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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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고린도전서 7장 13-15절

말씀 : 나는 가정의 제사장



1970년도에 출판된 앨빈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에는 미래에 대한 개인의 막연한 의견이나 공상을 쓴 것이 아니라 모든 데이터와 앞으로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놓고 장차 이 사회와 인간의 생활 구조가 어떻게 변할 것이며, 특히 가정은 어떻게 변할 것이냐 등의 문제를 다루는 일종의 예언 책입니다. 앨빈 토플러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야흐로 우리의 현실 생활에서는 변화의 물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밀어닥치고 있다. 사회 구조를 뒤엎고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생활신조까지 파괴하고 있다.”


이 책의 11장 제목은 “파괴될 가족”입니다. 초산업화 시대가 되면 생명 공학이 발달해서 사람의 수정란을 보관했다가 파는 베이비 센터, 사회가 급변하니까 지루하게 한 사람을 데리고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여러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시리즈 결혼,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죄악시하는 혼전 동거 등을 모든 사회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일부에서는 독신주의가 팽창하는 반면에 일부다처주의까지 등장하고, 동성연애가 법적으로 공인이 되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환경이 된다고 예언하였습니다.


그 책이 나온지 47년이 지난 오늘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47년 전에 미래를 예측한 한 학자의 이론이 현실이 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는 이제 사회와 문화의 문제가 아닌 가정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현실적 안타까움은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이상형을 찾는 일을 포기한지 오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상형은커녕 적당한 사람이라도 만나 결혼하면 다행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책의 내용과 보고 내용을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의 가정상, 우리 자녀들이 겪게 될 가정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눈을 감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되었습니다. 우리는 10년의 시간이면 과거 100-200년 동안 지속되던 가치관이 정립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변화가 빠릅니다. 이러므로 가정은 반드시 파괴된다는 학자들의 견해가 결코 허구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대화 속에서 이와 같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녀는 요새 많이 나으면 안 돼.’ 이 표현을 사용한지도 벌써 20년이 되어갑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자녀는 많아야 그 가정이 튼튼해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효도였고, 애국이었습니다. 자녀 출산이 부모님께 효도요, 가문의 영광이고, 민족 앞에 애국이었는데 지금은 ‘다자녀’가 애물단지로 전락되었습니다. ‘애 많으면 귀찮아’ 라고 말합니다. 하나만 나아서 키우고 그 자녀들도 자기 세대가 있고, 우리도 우리 세대가 있으니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즐기자는 사고방식이 부모님들에게 자리 잡힌지도 오래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사들을 어렵지 않게 신문이나 방송매체를 통해 접하게 됩니다.
“반찬 투정 꾸짖는 아버지 살해한 20대 긴급 체포”, “중풍 칠순 노모 살해한 50대 아들 영장”, “꾸중 들은 손자, 할머니 살해”, “치매 걸린 아버지 구타 살인”, “고부 갈등 고민 아들, 치매 80대 노모 강변에 고려장”, “용돈 거절당하자 어머니 폭행”, “집 팔게 인감 달라며 아버지 폭행 30대 영장”, “장가보내 주지 않는다며 아버지 폭행.” 등입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문제가 극히 일부 불효자들의 반인륜적 패륜 행위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이익과 편안함만을 과도하게 요구하다 보니 자녀를 위한 희생까지도 사치로 여겨지는 풍토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심각한 내일을 앞 두고, 가정이 파괴될 위기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학자들은 연구하고 미래에 대한 예측을 이론으로 만들어 제시하지만 답은 제시해 주지 못합니다. 미래학자들은 사람이 변하면, 변하는대로 우리가 적응하면 된다는 식의 처방전을 대시합니다. 시리즈 결혼이 가장 알맞은 형태라면 그것을 채택하면 되고, 독신주의가 가장 좋은 방법이면 독신주의를 채택하면 되는 것 아니냐, 그래서 적응력이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시대인 만큼 누구든지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면 좋고, 적응을 잘하는 제도이면 그것이 최선이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의 고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리 삶에 최고 적합하고 좋은 제도를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각 가정마다 하나님을 모시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가정 붕괴의 위기를 막을 수 없습니다. 저희 교회가 개척교회로 규모가 적지만 교회의 규모와 사명은 다릅니다. 규모가 작다고 사명이 작을 순 없습니다. 목회자 가정인 저희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만이라도 이 사명에 목숨을 거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위해서, 이후에 가정을 이룰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복음적이고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일구어야 합니다.


시편 127편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사랑하는 성도님,
가정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의 제도는 모든 사람이 삶이 시작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안전한 제도입니다. 가정의 제도는 사람이 삶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그 가정의 구조와 질서를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가장 옳은 방법이라는 확신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자기만을 생각하는 풍토 때문입니다. 나만 편하면 되고, 나만 좋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들이 가정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안위를 위한 제도를 뒤로하고 가정을 가정답게 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의 방법대로 가정이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변천되는 문명의 수라장 속에서 가정을 행복하게 지키고 건전하게 지키는 길은 가정에 하나님을 모시어 들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치관에 따라 가정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따라 가정생활을 하기 위해 새로운 갈등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한 가정에 가정을 무너지게하는 질서가 있고, 세우는 질서가 있으니 갈등을 겪게 됩니다. 자칫 가정이 조용하길 원하여 무너지는 질서임을 알면서도 적당히 수긍하면서 큰 소리 나지 않게 하려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하지만 이것은 가정을 큰 마찰없이 조용히 무너지게 하는 것이지 진정한 평화를 위한 노력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가정을 세우고자 하는 노력을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노력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가정에 은혜가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한 사람으로 온 가족은 경건한 하나님의 가정제도 아래 진정한 평안과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노력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정이 무너져 내려 불행을 겪는 고초에 비하면 쉽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성경대로 가정을 가꾸자는 의견과 세상 사람들이 가는 데로 우리 가정도 가면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여기에는 완력도 물리력도 개입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이야기 이지만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오히려 더 건전하고 아름다운 축복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밑거름입니다. 이것은 가정을 파괴하는 독소가 될 수 없고 부부 간에 애정을 깨는 어떤 장애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눈물, 그 고통, 그 한숨은 절대로 헛되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큰 수술을 앞두고 환부를 도려내는 고통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아내 때문에 남편이, 자녀들이 거룩해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남편 때문에 아내와 자녀들이 거룩해지고, 예수님을 믿는 자녀로 인해 부모님들이 거룩해 집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가정에 한 사람의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면 그와 함께 하는 가족들이 비록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그의 거룩성이 그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옛날 구약 시대 제사장들은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들고 와서 사용하는 그릇마다 거룩해 집니다. 제사장이 사용하는 제물마다 거룩해 집니다. 제사장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가정 안에 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요. 그 가정을 위한 제사장입니다. 그 제사장이 기도하는 가족들은 거룩해 지고, 그의 축복을 받는 가족들이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진다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님, 가정의 식구들이 비록 지금까지 교회를 다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나 하나의 위치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꼭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남편과 자녀를, 아내와 자녀를, 부모님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올려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제사장입니다. 그 기도가 살아 있는 이상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의 계획하신데로 반드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니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거듭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데로 자라나는 자녀들을 위해서,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적 가정 풍토를 위해서 가정을 말씀을 좇아 세우는 일에 절망해서도 낙심하여 주저 앉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 17절 말씀입니다.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 수 있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사도행전 16장 31절의 말씀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 한 사람으로 그 가정 전체가 구원을 받고 돌아올 확률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높습니다. 바울은 그 가능성의 확률을 의심하지 않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빌립보 간수가 예수님을 믿자마자 온 가족이 나와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로마 군인 장교였던 고넬료를 또한 알고 있습니다. 고넬료의 믿음 생활은 가족 뿐 아니라 그의 친지와 부하들까지 예수님을 믿게 하였습니다. 성경은 고넬료의 부하들을 일컬어 경건한 부하들이라고 소개합니다. 루디아가 예수님을 믿고 그의 자녀들이 또한 예수님을 믿게 된 역사적 사실도 볼 수 있습니다.


가족 전부가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왔을 때 진정한 행복의 꽃이 가정에 피기 시작합니다. 부부간에 진정한 사랑은 눈물로도 확인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가정의 행복과 감사를 온 가족이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돈 쓰는 재미, 돈 있다고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재미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자녀들보다 공부 잘 한다고 자녀 자랑하는 것으로 진정한 가정의 행복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원리를 회복해 나가는 노력가운데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은 하나님의 원리에 따라 우리의 가정이 경영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온갖 자랑 할 이유와 상황과 물질적 풍요가 있다고 하여 그것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가정의 평안을 가져다 주지는 못합니다. 남이 없는 것 가졌다고 하면서 자랑하고 싶어하는 분들의 내면의 공허함과 무상함을 제가 잘 압니다. 그들이 자랑하고 싶은 것은 내면의 행복이 아닙니다. 그것이 없기 때문에 껍데기에 불구한 자신이 소유한 것을 애써 자랑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가 깨져 이미 자신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랑할 것은 단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것을 자신의 행복의 증거로 내세우고 싶은 것이지만 그 속마음은 거기에 행복을 위한 증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단지 내세울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며, 그렇게 겉으로라도 행복한 척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소유의 능력을 키우는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원리에로 돌아가는 노력에 있습니다. 가정의 위기가 다가옵니다. 우리는 이미 가정의 위기를 겪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자녀 세대에 가정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두려운 마음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위기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모든 가정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가족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는 것입니다. 가정의 제사장이 되어 가족을 섬기며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사장이기에 우리가 손을 대는 것마다 거룩하여지고, 우리와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거룩하여 집니다. 이 거룩한 직분을 믿음으로 감당함으로 우리 가정과 다가오는 자녀 세대의 가정을 구원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복된 가정을 이루어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