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은혜는 상처를 치료해 줍니다 [눅17장11-19절]

작성일 : 17-03-21 03:03
업로드 : 최고관리자
 

성경 : 누가복음 17장 11-19절
말씀 : 은혜는 상처를 치료해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들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한국 사회를 치열한 경쟁 사회로 생각합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한국 사회를 대부분 경쟁적인 사회로 표현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겨야 하는 경쟁구도가 유치원 때부터 형성됩니다. 어려서부터 이겨야 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나의 삶을 살기 위해 늘 남과 비교해야 합니다. 그런 비교하는 생활 패턴에서 늘 피해 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런 피해의식 사회 구조 때문에 그런지 한국 사람들 화도 잘 내지만 상처도 많이 받습니다. ‘상처 받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교회 안과 밖으로 상처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많은 사람들의 이유는 상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토록 상처를 많이 받는 이유는 그만큼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말과 몸짓으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상처를 많이 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 나의 말과 행동으로 상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너무 조심스러워 표현이 부자연스러워서 또 다른 오해를 낳는 것도 조심해야 되지만 생각 없이 나 좋고 편한대로 말과 행동을 하여 남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주는 상처되는 말과 행동에도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나 자신을 가꾸는 일입니다. 같은 말과 행동에도 누구는 상처를 받고 다른 누구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르는데 다른 사람을 보니 한 번 웃어 버리고 툭툭 털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자신이 상처도 받지만 사랑과 은혜를 더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뭐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깁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엇이 상처를 상처돼지 않게 할까요? 그것은 은혜입니다. 그것은 감사입니다.
세상에는 상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은혜도 있고 감사 할 일도 있습니다. 상처와 은혜의 공통점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도, 부요한 사람도 상처 받고 동시에 은혜와 사랑도 받습니다. 아픈 사람 건강한 사람, 혼자 있는 사람 함께 사는 공동체에도 상처와 은혜는 구분하지 않고 찾아갑니다. 초등학교 1학년짜리 막내가 종종 언니들에게 상처받아서 속상하다는 말을 합니다. 어떨땐 언니들에게 사랑을 너무 받아서 언니들이 최고라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상처와 사랑을 동시에 받는 아이가 상처로 억울해 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상처를 반복하여 생각하지 않고 받은 은혜와 사랑을 반복하여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효과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상처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면 상처를 반복하여 생각하지 말고 받은 은혜와 사랑을 반복하여 생각하고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옛말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 흘려보내니 은혜는 우리의 마음에 쌓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억울함과 상처는 돌에 새기니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미워지기 시작하고 그 미움의 감정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나도 어느 순간부터인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새겨지고 새겨진 것이 은혜가 아닌 상처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등학교때는 할아버지께서 동네에서 부자로 사셨기 때문에 저도 나름 그 혜택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동네에서 몇 안 되는 전화기가 있었고, 텔레비전이 있었고, 농사일을 할 때 사용되는 고가의 경운기도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에서는 집에 텔레비전이 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당시 텔레비전은 재산목록에 들만큼 큰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좀 힘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일찍 돌아가시면서 어머님 홀로 삼남매를 키우셔야 했기 때문에 가정환경도 좀 시끄러웠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대학교 때는 복사할 비용 1,000원이 없어서 울어본 적도 있었고, 주말에 집에 오고가기 위해 차비도 신경써야 할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종종 몇 천원 차비도 빌리곤 했습니다. 대학교 때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학비를 납부한 적도 있었고, 대학원 논문을 쓸 때는 큰 아이 돌 잔치때 들어온 축의금으로 논문을 마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는 포항에서 서울로 공부하러 다닐 때였는데 운전하는 내내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부요함에 비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서 그런지 저는 부유한 때의 기억이 거의 없고, 힘들었던 때의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경제적인 이유로 상처를 많이 받을 수도 있는데 저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종종 돈 갖고 치사하게 구는 사람들을 볼 때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 안타깝다는 마음으로 지나치곤하지 그것이 상처가 되지는 않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상처로 남았다면 저는 목회를 하면서 돈을 우선시 하였을 것입니다. 저도 돈이 좋고 필요하지만 그 이유가 저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감사하고 좋습니다. 이런 마음을 품는 것이 가능한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상처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보면 저는 제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자주 묵상합니다. 그것을 계산해 보기도 합니다. 값으로도 계산해 보고, 크기와 정도로도 계산해 봅니다. 제가 계산할 때 한 번도 그 값이 적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힘들 때 우리 사람들이 대개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분하고 억울해서 울면 상처가 되어 상처 주는 사람이 되고, 은혜와 사랑 때문에 울게 되면 상처를 치유해 주는 사람이 됩니다. 저는 나름 후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동일한 은혜를 받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평소에도 생각하고 묵상해야 하는 것은 감사한 일들과 은혜입니다. 생각과 묵상의 힘은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묵상하든 그것을 커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상처받은 것만 생각하면 억울함과 분노 증오심이 커지게 될 것이지만 반대로 받은 은혜와 감사를 생각하고 묵상하면 그 마음이 더욱 풍요로워 우리로 하여금 행복한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순절기 동안 애쓰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서로를 위한 중보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며 나의 작지만 일부분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 살기에도 바쁜 시대를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돌볼 여력이 어디 있으며, 나 쓸 것도 부족한 지금 단 돈 $1 이라도 남을 위해서 나눌 것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저녁 아이 셋과 함께 가족이 모여서 기도 시간을 갖습니다. 평소에는 3-5분 정도 갖는 기도시간이 지금은 10분 정도로 2배 가량 늘었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작성하여 하기로 한 중보기도 때문입니다. 기도 짧게 하고 일찍 눕고 싶은 것이 어린아이의 마음이지만 우리는 한 주 동안 정말 열심히 기도드렸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가 목사이고 목사 가정이기 때문에 그렇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저와 우리 가정을 위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기도해 주시는 부모님 때문입니다. 성도님들 때문입니다. 그분들의 기도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고, 또한 그것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 사랑을 갚고 있는 것입니다. 안 받고, 못 받은 것 생각하면 불만이 커지지만, 받은 것 누린 것을 생각하고 묵상하면 감사가 넘치고 행복이 넘치게 됩니다. 그것이 너무 좋으니 기쁜 마음으로 남을 위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열 명의 나병환자가 고침을 받는 내용입니다.
열 명이 다 병으로부터 나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한 명만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10 환자 모두가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열 환자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아마도 한 사람의 사마리아인을 언급한 것으로 봐서 나머지 9명은 스스로를 의롭고 경건하다고 여겼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상 사마리아인이 감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평소 사마리아인들은 상처를 많이 받는 족속이었습니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외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상처였습니다. 무슨 말과 행동으로 인한 상처가 아니라 존재만으로도 상처를 받는 삶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재주 없는 삶 또는 재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많은 경우 고마움을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상처가 크고 억울하고 분함 감정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한 사람은 대개 얼굴이 어둡습니다. 늘 짖눌리고 밟히고 차별당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남을 믿지 못하고 늘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면이 강합니다. 하지만 본문에 소개된 사마리아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고, 감사를 표현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침받은 후 바로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다음과 같은 시편 기자의 고백을 다 같이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116편 12-14절)


우리가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은혜들을 늘 묵상하여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의 은혜가 가장 큽니까? “은혜”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마도 부모님이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기도제목을 보면서 그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님의 은혜를 대신할 수 있는 은혜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간곡한 기도를 통해서 부모님께서 건강하시고 잠도 잘 주무시고 함께 꽃구경도 가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래도록 부모님께 효도하는 그런 멋진 자녀의 꿈을 이루어 가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일들로 상처를 받았습니까? 누구로부터 상처를 받았습니까?
우리가 사순절 절기를 보내면서 그 모든 상처들을 치유 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은혜와 감사한 일들을 깊이 그리고 반복해서 묵상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은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왜 부모님의 은혜를 넘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묵상하고 생각하여야 할까요? 우리가 부모님의 은혜를 간직하는 것만으로 상처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큰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안겨주는 원수 같은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 더 큰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상처를 주면서 괴롭히는 사람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시지 못합니다. 저도 부모인 까닭에 자녀들에게 너희들 괴롭히는 친구들 용서하라고 말하기보다 너도 말하지 말고 같이 놀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그냥 무시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의 마음이 이와 같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받은 상처에서 자유로우려면 더 큰 은혜인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고 반복하여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은혜를 묵상하면 우리는 상처를 안고 고통 겪는 삶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으로 감격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노력을 하고 그런 삶을 살아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내 안에 상처를 안고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미워하는 것은 나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됩니다.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도 있고, 상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은혜와 사랑이 상처를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상처를 반복적으로 생각하면서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키워나갑니다. 우리가 이 모든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컷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반복적으로 깊이 생각하며 그 사랑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존재 자체로 상처가 되는 삶이라 할지라도 작은 은혜와 사랑을 묵상함으로 상처를 극복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