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사순절에 합당한 삶 [에베소서 4장 28절]

작성일 : 17-03-06 23:49
업로드 : 최고관리자
 

성경 : 에베소서 4장 28절
말씀 : 사순절에 합당한 우리의 삶(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리더쉽과 동기 연구가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빈 S. 샤르마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쓴 책의 이름이 너무 재미있어서 소개
합니다. "내가 죽을 때 누가 울어줄까?" 라고 하는 책입니다. 아주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그는 백 한 가지 지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말이 그 책에 있습니다.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너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은 기뻐했단다. 그런데 네가 죽을 때는 많은 사람이 울겠지만 그때 네 자신은 기뻐할 수 있도록 살아야한다." 


우리가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지 아니하면 베풀고자 할 때에 할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 내가 죽을 때 주변사람들은 웁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울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가장 행복 한 시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11년 전 우리는 ‘그 청년 바보 의사’라는 책의 주인공 안수현 의사를 통해 뜨거운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책의 서문에는 이렇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어느 청년 바보 의사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환자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면서, 몸을 치유해 줄 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헤아렸다. 자신의 환자가 유명을 달리하면 장례식에 직접 찾아가 유족을 위로했고, 퇴원한 환아의 생일에 집까지 찾아가 선물을 전하기도 했다. 의약분업사태 때는 동료들의 비난 속에서도 환자를 선택하여, 파업하지 않고 병원을 지켰다. 군의관이 되어서도 예수님의 흔적을 따르는 데 소홀하지 않았던 그는, 유행성출혈열로 33세에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예수님과 같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았다.”


지금도 그의 순결한 사랑의 삶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를 통한 장학회를 통해 한 해에도 많은 의료생들이 장학금을 지급받고 있고, 그가 살아생전 가꾸었던 교회, 학교, 의료 사역들은 그의 신앙적 삶을 기초석으로 하여 왕성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4000명이 넘는 하객이 몰렸다고 합니다. 한경직 목사님 장례 이후 이렇게 많은 장례인파는 처음이라며 영락교회 측도 놀라워했습니다. 순결한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그에게 주어진 진정한 재능은 ‘사랑의 은사’였습니다. 장례식 조문객의 헤아릴 수 없는 눈물과 이후 그의 저서를 통해 그의 숭고한 삶을 알게 된 이후 흘렸던 많은 분들의 눈물들은 고 안수현의사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의 마지막 날 이 세상에서의 환송식과 천국에서의 환영식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때 우리 역시 나는 울지 않지만 나를 환송해 주는 많은 분들은 울어줄 수 있는 그런 삶을 함께 소망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를 수 많은 천사들과 함께 환영해 주실 그 순간을 소망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쁨과 행복에 맞는 삶을 함께 실천해 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와 같은 삶을 가름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늘 나의 삶입니다. 바로 내가 오늘 하는 일이며 그 일의 목적과 의미입니다.


예로부터 철학자들이나 인류학자들은 인간을 가리켜 "호모 바베르" 노동하는 존재라고 불러왔습니다. 인류가 물어온 오래된 질문 가운데 하나는 동물에게도 노동이 있느냐 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의 대답은 동물들에게도 생존을 위한 노동은 있다는 것입니다. 생존을 하기 위한 노동은 있지만 의미를 느끼기 위한 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이라는 것은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특성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고 안수현 청년의사와 같은 숭고한 신앙적 삶을 살았던 분들은 한결같이 동물적 노동을 위해 산 것이 아니라 즉 생존을 위한, 노동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의미있는 노동을 한 분들입니다. 그 노동은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를 위한 노동입니다. 약자를 위한 사랑이며, 배려였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베풂이었으며, 병약한 자들을 위한 회복케 하는 삶이었습니다. 그것은 봉사이며, 섬김의 삶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먼저 우리가 노동에 대한 성경적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노동은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동은 하나님의 형벌이 아닙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 타락하기 전에도 일은 있었습니다. 물론 타락 한 후에도 우리는 일을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즐거워해야 할 노동이 괴로운 노동이 된 것입니다. 타락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인류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기여한 가장 커다란 한 측면 중에 하나는 노동의 적극적인 의미, 혹은 노동의 신성한 측면을 강조해 온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제외한, 기독교 신앙이 부재한 모든 문화권에서는 사실은 노동을 부정적으로 인식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한 세기 전만 해도 한국 사람들의 노동관도 매우 부정적 이였습니다. 높아질수록, 양반일수록 일은 안하고 천한 사람일수록 일을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일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의 하나님, 그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설명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땀 흘려 수고하는 일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그것은 성경적 가르침일 수 없습니다.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만을 위해 일하는 것은 나쁘다고 말씀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우리 민족을 성실하고 근면한 민족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뭐든 하면 잘 합니다. 우리나라가 핸드폰도 잘 만듭니다. 차도 잘 만듭니다. 배도 잘 만듭니다. 이제 비행기도 만들어서 수출하고, 탱크나 헬기 등을 만들어 수출합니다. 미국내 어느 매장을 가도 한국 제품들 보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국제회의나 국제대회도 모두 개최하였습니다. G20회의도 개최하고, 올림픽, 아시안게임, 2018년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도 합니다. 하면 잘하는 근성이 있는 민족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인정받는 것은 일을 할 때 열심히도 하지만 잘한다는 겁니다. 


우리 민족이 성실히 일하고 잘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불과 한 세기 전만해도 원조를 받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 곳곳에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잘 살도록 몫을 감당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민족이 성숙한 민족입니다. 우리민족이 지금은 어수선한 국면에 처해있지만 그래도 긍지를 가져도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의 문제도 잘 해결해 나갈 것이며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도 그와 같은 해결사역할도 잘 해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잘해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복음을 전한 선교사님들의 열매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땀이며 후손 사랑하는 결실입니다. 우리가 노동함으로서 자신과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갑니다. 또 노동의 결과로서 좀 여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풍성한 삶을 즐기면서 질적인 삶을 이 땅에서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현실적인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빠른 시간 안에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만하면 됐다’라고 만족하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늘 부족했고, 늘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불안하고 불행히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앞에 두고 있지만 정작 3만불 시대에 진입해도 우리는 ‘이만하면 됐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미국은 국민소득 5만불 또는 6만불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만하면 됐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잘 살고 있음에도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 제일주의’를 천명하면서 자국민들이 더 잘 살아야 한다면서 약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행정명령들을 쏟아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국민소득 10만불 시대를 살아도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서 나만을 위한 생존적 노동을 한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비록 1만불 2만불 시대에 살아서 성경 말씀에 순종하여 가난한 자들, 연약한 자들, 병든 자들을 위한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산다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기독교 노동관은 나만의 축복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노동으로 자신을 축복 되게 할뿐만 아니라 노동으로 이웃들을 축복 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축복 되게 할 수 있기를 말씀합니다. 즉, 내가 노동에서 버는 결과로 나 뿐만이 아니라 이웃들을 복되게 하는 것, 기독교의 노동관은 거기까지 나아갑니다. 우리 민족이 국제적으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성장한 것과 같이 우리 민족 한 사람 한 사람도 그와 같은 생각에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국제 규범에 따라 하는 이상으로 한 개인 개인이 성숙함으로 그런 삶을 실천하는 일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8).


며칠 전 본 인터뷰 내용인데 너무 감동적인 삶을 살고 계시는 분이어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만성두드러기를 앓던 한 청년이 덕수상고를 중퇴합니다. 작은 화장품 회사에 입사해 10년간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1992년 소망화장품을 창업하게 됩니다. 창업 이유는 ‘기부를 많이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995년부터 매년 매출의 1~2%, 때론 이익의 30%를 기아대책·월드비전 같은 구호단체에 기부해왔습니다. 지난 20여년간 누적 기부액은 100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꽃을 든 남자’ 화장품 브랜드를 만든 강석창 소망글로벌 회장 이야기입니다.


강석찬 회장님의 이와 같은 삶이 가능한 것은 그분의 돈에 대한 가치관 때문입니다. 그분은 “돈은 잠시 맡아 보관하는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버는 돈은 자기 돈이 아니라고 서스럼없이 말합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은 제일 먼저 자동차를 바꿉니다. 기사를 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강석찬 회장님이 타고 다니는 차는 르망, 프라이드, 라비타 등이라고 합니다. 검소하게 살면서 그분이 노력하는 것은 돈 버는 것입니다. 또한 돈 버는 이유는 더 많이 기부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사업해서 고용을 창출하고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게 되면 그 사람들을 축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내가 자선하고 돌아보게 되면 이웃들을 복되게 하는 것이 됩니다. 물론 구제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제하기 위해서 일해야 되고 또 선교하기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 노동관의 목적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사순 절기를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면서 우리를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나만을 위해서만 산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죄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면 회개하고 우리의 삶을 바꾸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구제할 것이 있게 하기 위하여 그와 같은 멋진 삶의 의미를 안고, 그와 같은 멋진 일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과 우리 가정을 축복해 주셨듯이 우리의 축복이 이웃과 연약한 자들에게 흘러 가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역할이라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하루하루의 삶이 우리를 보람되게 하고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작은 도움을 받는 모든 이들도 희망을 볼 것이며 행복을 한껏 안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