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살전5장14-15절]

작성일 : 17-02-2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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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15절
말씀 :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합니다. 수동적인 사람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잘 하는 것을 더 잘하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도록 하는데도 칭찬의 기술을 필요합니다. 무조건 열심히 하라고 하거나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감정적으로 부작용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이와 같은 칭찬은 모든 사람이 좋아합니다. 어린 아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좋아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손주들의 칭찬을 무척 좋아합니다. 저는 아빠로서 아이들의 칭찬을 들으면 참으로 좋습니다. 좋을 뿐 아니라 더 잘해주고 싶어 합니다. 종종 아이들이 확인합니다. “아빠도 칭찬 들으면 좋아요?” 저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합니다. “무척 좋아”. “얼마만큼 좋아요?”, “죽을만큼 좋아”라고 합니다. 자녀들에게 칭찬듣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칭찬 듣는 일은 죽을 만큼 좋은 일입니다. 반대로 무시당하는 일도 죽을 만큼 힘든 일입니다. 말을 해도 무시당하고,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는데 무시당할 때 죽을 만큼 힘듭니다. 아이들이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시당하는 일입니다. 선생님께 용기내서 말하는데 선생님이 무시합니다. 친구들에게 용기내어 다가가는데 무시 합니다. 그것이 힘든 일입니다. 가정에서 아내에게 힘든 일은 끊임없는 가사일 보다 더욱 힘든 것은 남편에게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남편은 무관심합니다. 아이들 일로 상의하고 싶어도, 부모님 일로 상의하고 싶어도 ‘당신이 뭘 알아’하고 무시합니다. 가정의 크고 작은 일들로 대화하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데 무시합니다. 남편의 무시는 아내에게는 폭력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에 대한 아내에 대한 무시 역시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으로 삼았던 애굽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셨습니다. 400년 동안 종으로 살아서 능동적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모세는 잘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본인의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했습니다.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이는 실로 두려운 일입니다. 칼과 창을 사용해 보지 못한 백성들과 함께 칼과 무기로 중무장한 군대와 싸워 이겨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두려웠습니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여호수아를 임명한 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여호수아 1:5,6)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격려해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확신시켜 주시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후로도 ‘오직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하셔 여호수아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는 힘이 났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백성의 관리들에게 말합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여호수아1:10,11)


하나님의 방법은 격려였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여호수아! 너도 모세와 같이 잘 할 수 있어. 내가 모세와 함께 했던 것과 같이 너와도 함께 할 거야. 두려워하지마. 무서워하지도마. 네가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격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격려는 약한자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복음송가 중에 ‘약한 나로 강하게’라는 가사의 찬양이 있습니다.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우리가 늘 하나님께 고백적으로 드리는 찬양입니다. 우리가 약해져 두려워할 때 강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격려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찬양을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격려를 받는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나라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로 한참 나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평창 올림픽 전에 있었던 올림픽이 2014년에 있었던 소치 올림픽이었습니다.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한층 드높여주는 경기 종목은 쇼트트랙입니다. 쇼트트랙 중에서도 계주 종목입니다. 이 종목에 참가했던 선수는 박승희, 심석희, 조해리, 김아랑 선수였습니다. 3000미터 계주 선수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출발 1등, 16바퀴에서 2등, 13바퀴에서 3등, 11바퀴에서 다시 2등, 9바퀴에서 1등, 3바퀴에서 2등, 1바퀴를 남겨 둔 상황에서 출전 선수중 막내였던 심석희 선수가 역전하면서 우승을 거두게 됩니다. 저는 경기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7바퀴를 남겨두고는 속도를 내고 앞자리를 내 주면 안되는 지점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3바퀴를 남겨두고 중국에게 밀렸던 것입니다.


이 경기를 보는 중에 감동이 됐던 것은 선배 선수들의 격려와 응원이었습니다. 당시 해설위원은 안상미 전 1998년 나가노 올림픽 계주 금메달리스트였습니다. 후배 선수들이 경기 내내 순위가 밀려날 때마다 심지어 3바퀴를 남겨두고 2등으로 밀려났을 때에도 연신 괜찮다는 말로 후배들을 위로합니다. ‘기회를 다시 보면 됩니다’는 말로 격려합니다. 평상시 몸에 배어 있는 표현이 아니었다면 그와 같은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나올 수 없는 표현들입니다. 역전승을 거둔 후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춥니다. 한국 관중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그때 비춰진 모습에 이상화 선수가 있었습니다. 함께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에서 후배들에 대한 사랑이 읽혀졌습니다. 지금은 고인이된 노진규 선수는 당시 출전을 앞둔 후배 선수들을 향해서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우승 후보라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칭찬과 격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상대가 잘 해주길 바라고, 상대가 더 행복하길 바라고, 상대가 나보다 더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랑하는 자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격려는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선물입니다. 칭찬과 격려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색깔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칭찬거리가 먼저 보입니까, 아니면 지적하고 판단할 거리가 먼저 보입니까? 우리가 상대를 사랑할 때 어떤 사람은 칭찬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지적과 판단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지적하는 사람도 칭찬하는 사람도 모두 남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두 사랑의 표현은 맞습니다. 하지만 비율의 문제가 있습니다. 순서의 문제가 있습니다. 순서를 말하면 칭찬과 격려가 먼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부활하셔서 먼저 베드로를 찾아 가셨습니다. 당시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으로 자신도 죽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후회한 후였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예전의 본업인 어부로서 배를 다시 타던 때였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잘못한 일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먼저 갈릴리 호수가로 베드로를 찾아 가셨습니다. 책망하기 위함도, 잘못을 지적하기 위함도 아니셨습니다. 베드로를 격려하여 그가 해야 할 사명을 감당토록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거듭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는 눈물의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을 깨닫습니다. 베드로는 이후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문을 엽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주님의 격려와 칭찬입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고 요구하는 것 역시 지적이나 판단보다 칭찬과 격려입니다. 칭찬도 지적과 판단도 모두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지적보다 칭찬과 격려를 더 많이 하도록 노력하십시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이며 저와 여러분이 그렇게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쓴 서신서를 통해서도 우리는 이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서신서를 쓸 때 그 지역과 교회 또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거나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편지를 썼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편지인 서신서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먼저는 감사의 내용을 썼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편지를 받는 교회나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먼저 기록합니다. 그리고 나서 문제에 대한 언급과 부탁의 글을 기록합니다. 이미 기분이 좋아진 수신자는 글을 읽는 내내 부담이 없거나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감사와 고마움을 먼저 기록하는 것은 이후 언급할 상황을 해결할 힘을 주기 위함입니다. 격려와 칭찬은 문제를 해결하는 힘입니다. 하지만 판단과 지적은 문제를 알게 하지만 해결할 힘을 공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칭찬과 격려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베드로는 바울보다 먼저 이방인을 위한 선교를 시작한 인물입니다. 당시 이방인은 칭찬이나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험담과 비방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이방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그들을 먼저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을 초기부터 오순절 때까지 베드로는 그런 사랑을 실천할 몰랐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이방인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요 함께 했던 12명의 동료들 특히 요한과 마찰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늘 다투었습니다. 상대가 잘하는 것이 싫었고 늘 배가 아팠습니다. 자기가 으뜸이 되고 싶었습니다. 으뜸은 되고 싶은데 자신이 열심히 해서 으뜸이 되려고 하지 않고 남을 무시하며 깎아 내림으로 으뜸이 되고자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님을 모신 제자이며, 요한복음과 요한 1,2,3서와 계시록을 기록한 제자입니다. 그가 쓴 복음서와 서신서에는 사랑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별명이 사랑의 사도입니다. 하지만 요한 역시 예수님 승천하실 때까지 남이 잘 되기를 바라고 돕기 보다는 베드로와 함께 싸우고 경쟁했습니다. 요한의 부모는 예수님께 찾아와 아들의 출세까지 부탁드렸었습니다. 베드로의 표현과 요한의 표현은 같았습니다. 거칠었습니다. 배려와 격려는 없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들의 언어가 바뀌었습니다. 겸손해졌습니다. 전에는 내가 남보다 잘 돼야 했습니다. 그래서 남을 무시해야만 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 남이 나보다 잘돼야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겸손해져야 했고, 남을 높여야 했습니다. 변화된 베드로와 요한에게 칭찬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격려와 칭찬 받는 것은 좋은 일이고 행복한 것이지만 가족과 이웃, 공동체 안의 다른 성도들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일은 힘든 일 일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이와 같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성령 하나님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배려와 격려의 삶을 살고자 기도하며 애쓴다면 반드시 성령님의 도움과 격려를 받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우리도 성령님의 사람이 되면 문제를 지적하는 일보다 그 문제와 상황을 해결하고 넘을 수 있는 힘을 공급하는 격려자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