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가장 좋은 삶의 길 - 고린도전서 13장4-7절

작성일 : 17-02-0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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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고린도전서 13장 4-7절
말씀 : 가장 좋은 삶의 길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과 통할 때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울 때 진정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잘 통했던 아담은 하와를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곁에 데려다 주셨을 때 “이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행복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후에 죄가 하나님과 아담의 사이를 갈라  놓았을 때 아담은 모든 잘못의 원인이 하와라고 핑계를 댑니다. 사랑이 미움이 된 것입니다.


죄는 사랑을 깨트립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깨트립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사이를 깨트립니다. 그래서 사람은 죄를 가까이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속죄의 양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질 때, 하나님과 잘 통할 때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고, 그 사랑 때문에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불안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서 성령님의 임재를 사모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현상은 사랑이었습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네 것과 내 것이 없어졌습니다.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함께 있는 것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잘 통할 때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삶이 이것을 증명해 줍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더불어 12명의 제자들 가운데서 늘 문제만 일으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다른 제자들에게는 늘 좌불안석이었습니다. 함께 있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던 베드로에게 성령님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된 그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이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람이 사람의 몸과 영혼을 치유하게 됩니다. 함께 머물기가 고통스러운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그와 함께 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성령과 통하여 사랑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바울의 삶이 또한 이것을 증명해 줍니다.
바울은 출생부터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몬드 수저를 들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성장하면서 최고의 스펙을 쌓았습니다. 당시 바울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의 권세를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당연 그를 피하여 도망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잡히면 감옥에 가두고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사울은 싫은 대상이 도망 다녀야할 대상이었습니다. 그에게 사랑이 아닌 증오심만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의 삶이 변합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거리와 문화, 국경을 넘나들며 만나길 원했고 소망했습니다. 이 역시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잘 통하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된다면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행복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꼭 욕심내서 갖고 싶은 것, 가졌다면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얼마 전 한 여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학생은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여유롭게 이것저것 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학생에게 최고의 가치는 돈입니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행복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삶의 우선순위가 될 것입니다. 그것에 의해서 여러분의 생각과 행동들이 결정될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 돈 쓰는 재미가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돈 쓰는 것이 재미있긴 하지만 행복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행복은 돈이 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만 합니다. 하지만 돈을 조금이라도 가져본 우리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에 증인입니다. 돈이 없을 때보다 있으면 좋지만 그것은 단지 잠깐 좋은 것이지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행복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행복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저는 금요일부터 주일 예배시간이 제일 행복합니다. 이유는 제가 말씀을 집중하여 묵상하고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기도드리고, 연구하면 깊이 하나님과 통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할 때 얼마나 마음이 기쁘냐면 어떨땐 춤도 춥니다. 어떨땐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납니다. 이 행복을 나누고 싶어서 아이들 옆에서 일부러 장난할 때도 있습니다. 주일이 기다려집니다. 여러분과 만나서 이 말씀을 나누고 싶은 욕심이 커집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이와같은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과 목표를 하나님께 둔 다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 삶의 최고의 소중한 가치로 여기실 수 있는 은혜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행복하시면 떠오르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행복의 대상은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행복으로 여기십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늘에 태양을 달아 주시고 행복하셨을 것입니다. 보시기에 좋았다 하셨습니다. 단지 태양을 하늘에 걸어 놓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들 때문입니다. 마치 아이들 방에 환한 등을 갈아주고 행복해 하시는 부모님의 마음과 같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6일 동안 내내 행복해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 하나 만들어 가시는 과정이 행복이셨습니다. 성경은 심히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기록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행복해 하셨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도, 심지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도 하나님의 최고의 가치가 바로 우리였음을 증명해 주는 사건들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가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행복의 일 순위는 바로 저와 여러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때 서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때 그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통해 경험된 사랑으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 버는 방법보다 사랑하는 방법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돈과 함께 건강, 명예, 승리를 통한 행복은 상대적입니다. 이 땅의 행복의 조건들은 모두 상대적입니다. 그래서 한 쪽에서 행복하면 다른 쪽에서는 불행합니다.


몇 해 전 영화 ‘명량’이라는 영화가 상영됐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명량 영화를 6번 본 것 같습니다.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여러 번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책이나 영화를 반복해서 읽고 보는 것은 저의 습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얼마저 제 아이들이 이 명량을 여러번 보는 것입니다. 가만히 봤더니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부분만 반복해서 봅니다. 이순신 장군이 일군 장군과 싸워 이기는 부분입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4번쯤 봤다고 합니다. 저는 단지 그 부분이 재미있나보다 생각했더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일본과 조선의 역사적 관계를 알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일본은 나쁜 나라가 된 것이고, 그 나라의 장군을 통쾌하게 물리쳐준 이순신 장군은 영웅이 된 것입니다. 당했을 때는 불행했는데 이기고 나니깐 행복한 것입니다.  나의 불행이 상대의 행복이 되고, 상대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구조입니다.


한 소년이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제목은 아버지에게 장기 이식 수술이 필요한 상황인제 이식할 장기가 없기 때문에 장기를 기증할 사람이 나타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날 이어서 기도를 드리던 중 하루는 섬뜩한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드리는 기도가 아버지를 살리는 기도인 동시에 기증해야할 누군가의 죽음을 위한 기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장기가 도착하여 온 가족이 행복해야 할 시간에 다른 한쪽에서는 가족 중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의 시간을 가져야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찾는 행복의 조건은 이와 같이 상반된 개념의 행복입니다. 승리하여 행복할 때 상대쪽에서는 패배로 인해 불행해야 하고, 내가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할 때 한 쪽에서는 수고만 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것으로 불행해 합니다. 내가 올라간 것으로 기뻐할 때 누군가는 내려갔음으로 인해 불행해 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세상의 행복의 조건들을 삶의 소중한 가치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주는 사람도 행복하고 받는 사람도 행복합니다. 한쪽은 행복하고 한쪽은 불행하지 않습니다. 받는 사람도 행복하고 주는 사람은 더 행복한 것이 사랑입니다. 제가 연애할 때는 종이학 1,000마리 접어서 선물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물어봅니다. 그것을 언제 접느냐고, 차라리 돈으로 다른 선물을 사주라고 주변에서도 말합니다. 하지만 종이로 학을 접는 사람은 내내 행복합니다. 몇 날이 걸리고 수 십일이 걸려도 그 순간 순간들이 행복합니다. 빨리 접고 싶어서 마음이 급해지기도 합니다. 바라보는 사람은 답답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사랑하여 종이를 접는 사람은 내내 행복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화답합니다. ‘사랑 해봤어,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마.’ 맞습니다. 사랑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과정이 얼마나 행복한지 잘 모릅니다. 


여기서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랑이 행복을 가져다 주느냐는 겁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린다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합니까. 결혼은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하지만 죽고 못 살 만큼 사랑해서 한 결혼이 오래지 않아 죽고 못 할 만큼 힘겹게 됩니다. 결혼하여 낳은 자녀들이 뱃 속에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갓 태어난 아이들은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여러분 속으로 대답해 보십시오. 지금도 자녀들이 사랑스럽기만 하십니까? 이 세상에는 부모 때문에 행복한 자녀들보다 부모 때문에 불행해 하는 자녀들이 훨씬 많습니다. 부모님 때문에 아파하는 자녀들이, 부모 때문에 고통받는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이 사랑을 설명할 때 부모의 자녀사랑은 대표적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랑이야 얼마나 불완전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바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사랑 위에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은 사랑이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시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십니다. ‘오래 참음’, ‘온유함’. ‘시기하지 않음’, ‘자랑하지 않음’, ‘교만하지 않음’, ‘무례히 행치 않음’,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음’, ‘성내지 않음’,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음’, ‘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함’, ‘진리와 함께 기뻐함’, ‘모든 것을 참음’, ‘모든 것을 믿음’, ‘모든 것을 바람’, ‘모든 것을 견딤’


우리는 대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다짐할 때 ‘나는 당신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뭐로가도 서울만 가면되지 하는 식의 사랑입니다. 과정과 방법이 중요합니다. 과정이 아름다워야 결과가 숭고하게 됩니다. 성경은 그 첫 번째 과정으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죽는다는 말은 자주해도 오래 참아준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는다는 말은 해도 무례하지 않을게라는 표현은 잘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면서 무례하게 행하는 일이 많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사랑이 오래 참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믿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 표현은 “사랑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잖아”입니다. 부모님들께서 아이들에게 종종 사용하시는 표현입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사는데”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한다면 자랑하지 말아야 되고,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 것이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방법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통해야 합니다.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행복하기 위해 큰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참을 수 있어’등의 반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킬 수 없고,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말씀은 우리 지킬 수 있는 말씀들입니다. 우리는 참을 수 있고, 서로를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교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우리 곁에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진정 행복한 삶을 위해 사랑의 길을 걷어야 합니다. 돈도 명예도 승리도 성공도 이 세상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한쪽이 행복하면 반대에 있는 사람들은 불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은 모두가 행복합니다. 온 가족을 차별과 구별없이 행복하게 하는 것도 사랑 뿐입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죽겠다는 말보다 참겠다는 말을 하시고, 믿겠다는 말을 하시고, 무례하지도 않고 교만하지도 않겠다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꼭 사랑하는 일에 도전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