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가장 고상한 것 [빌3장4-9절]

작성일 : 16-12-20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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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빌립보서 3장 4-9절
말씀 : 가장 고상한 것


소설 동의보감에 의원 유의태는 의원을 여덟 가지로 분류합니다.
여덟 가지 의원 중 그 제일은 ‘심의’입니다. 심의란 환자로 하여금 늘 마음이 편안케 하는 인격을 지닌 인물로 아픈 사람이 그 의원의 눈 빛만 보고도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경지를 지닌 의원을 뜻합니다. 병자에 대하여 진실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있는 의원입니다.  둘째는 먹을 식자를 사용하여 식의(食醫)입니다. 병자의 아픔을 판단함에 항상 정성이 모자라며 병자가 말하는 병명만 기억하고 약을 지어먹이는 의원입니다.    셋째는 약 약자를 사용하여 약의 입니다. 스스로 병자의 안색을 판단하여 병의 경중을 찾아내려 않고 병자가 말하는 대로 약을 짓되 처방전에 있는대로 약을 짓고 병자의 체력이나 내장이 튼튼한지 약한지도 비교하지 않고 병자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부위의 약만 마냥 먹이며 차도를 기다리는 의원입니다.  넷째가 어두울 혼자 혼의입니다. 병자가 위급해하면 저도 덩달아 허둥대고 병자가 쓰러져 잠들면 저도 엉덩이 붙이고 앉아 눈만 끔뻑끔뻑 대면서 오로지 비싼 약 팔 생각만 하는 의원입니다.  다섯째가 미칠 광자 광의입니다. 병자란 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항상 과장된다는 것을 모르고 오로지 환자의 말만 듣고 매운 약을 함부로 지어먹이는 자를 뜻합니다.  여섯째가 망의입니다. 병자의 고통보다 병자의 의복을 보고 약값을 많이 내는 자인가 아닌가에 더 관심이 있고 또한 밤중에 찾아오면 문구멍으로 내다보고 행색이 가난하면 따돌려 보내는 자이며 낮에 찾아가도 병자의 마르고 부한 것조차 보지 않으며 오로지 전에 누굴 무슨 약으로 고쳤다는 것만 증거 삼아서 비싼 약이 잘 낫는다고 우기는 자를 뜻합니다.  일곱째가 속일 사자의 사의입니다. 오직 의원의 행색만 흉내내며 스스로 안 아픈 이도 찾아다니며 병을 보는 체하다가 자기가 만든 한 가지 약으로 만병통치라 우기는 자를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죽일 살자 살의입니다. 춘하추동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는 이치와 생명이 살고 죽는 이치를 알지 못하며 하물며 아파 고통받는 이를 보고도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없고 나아가 남이 지은 약방문에 일일이 좋다 나쁘다 요란을 피우며 제 이름만 파는 자를 뜻합니다.


유의태가 의원을 여덟 가지로 구분하는 기준은 바로 사랑입니다.
의원이 되겠다는 동기가 아픈 환자를 사랑함에 있을수록 으뜸 의원이 되고, 환자를 단지 돈 벌이와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생각할수록 나쁜 의원이 됩니다.


팔의론을 말하고 난 후 유의태는 의원의 자격 중 으뜸이 사랑임을 그 아들 도지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아니 그 보다 더 명심해야 할 일은 세상에서 의원으로 종사하는 사람을 높이 알아주건 아니 알아주건간에 의원의 소임은 생명을 다루는 것임에서 세상 그 어느 생업보다도 고귀한 직업이다. 그러나 생명을 다룬다 함에서 아무리 귀하다 한들 의원 스스로 생명의 막중함을 아는 겸손한 인격을 지니지 않고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여 의원이 의원이고자 하는 공부의 시초는 1천5백92가지 약재의 이름을 외우고 다섯 가지의 맛(오미)과 그것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며 희노우사비경공 그 칠정의 신의 허실을 다 알았다 한들 마지막 한 가지를 알지 않고서는 진실로 의원일 수 없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사랑이다.”


한 마디로 의사의 최고의 덕목은 자기 사랑이 아닌 환자 사랑입니다. 환자를 자신의 유익을 위한 돈 벌이 수단으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 스스로 도구가 되어 환자들의 회복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이며 쓰여지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나에게 아무리 탁월한 솜씨가 있다하여도 그것을 사용하는 동기가 자기 이기심에 있고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에 있지 않다면 진정 바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겸손은 모든 덕목 중에 으뜸 덕목입니다.


감옥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하고 있는 바울의 삶은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살 때와 구분되어 집니다.
사울로 불려질 때의 그의 삶은 자기 사랑과 이기심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난후 그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의 삶은 차이가 없지만 사랑하는 대상이 바뀐 것입니다. 자기 사랑에 심취해 살아갈 때는 출생부터 해서 모든 것이 자기 사랑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지만, 사랑의 대상이 바뀐 후 바울은 자신을 도구 삼아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한 삶을 삽니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한 바울의 삶은 결국 이웃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자기 자신을 신뢰하면서 수년 동안 가문과 개인의 능력을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지난 주에 본문에서 바울은 4가지를 자랑했습니다. 이방인이었다가 개종 후 성인이 되어 할례를 받은 이들과 달리 자신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사실, 자신이 언약의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임은 물론 다른 혈통이 섞이지 않은 순수 혈통의 후손이라는 사실, 12지파중 가장 정통성이 있는 베냐민 지파였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비록 타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모국어에 정통하고 문화와 습관까지 완벽한 자신을 자랑했습니다.


이쯤 해도 바울의 자랑은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의 그 어떤 자랑보다 으뜸이었지만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세 가지를 이어 자랑합니다. 첫째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임을 자랑하고, 둘째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한 일, 셋째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임을 이어서 자랑합니다.


바울의 이와 같은 자기 자랑은 단지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로워질 수 있다면 자신은 어느 누구보다 의로운 사람이고 흠이 없는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의 자랑거리를 무력화시키고자 함입니다.


첫째 :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임을 자랑합니다.
바리새인은 마카비 혁명과 하스몬 왕조시대에 기원을 둡니다. 이들은 가장 유력한 파당이었고 정통파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헬라 정신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정통 신앙을 훼손하던 경솔하고 무감각한 유대인들의 처사에 대한 반감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그 세속적인 유대인들과 분리된 존재라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파리사이오스’, 즉 ‘분리주의자’라고 칭하였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모세의 율법 및 구약 성경에만 만족하지 않고 서기관들의 해석적 전승인 구전 율법을 포함한 무수한 계명도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의무로 규정하여 자신들을 옭맸습니다. 그들이 엄격한 계명을 더하여 만든 것은 “따라 올테면 따라와 봐” 하는  차별적인 교만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고 그 우월함이 그들의 의로움의 상징이 되게 하였습니다. 소히 잘난 맛에 사는 그런 사람들이었고 율법과 스스로 만든 계명들은 그 맛을 내는 재료였던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팔레스틴 밖 디아스포라 지역인 소아시아의 도시 다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헬라파 유대인으로 불릴 수도 있지만, 그는 분명 순수한 유대인의 혈통을 타고 태어났고 정통 바리새인으로서 자라났다는 남 다른 우월감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출생의 화려함과 동시에 그는 예루살렘에 유학하여 당대 최고의 유대 사상가였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까지 받게 되었으니 당대에 바울은 바리새인 중에서도 바리새인으로 스스로를 분리할 수 있는 모든 자격을 다 갖춘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그것을 계속해서 자랑했던 것입니다.


둘째 :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번역된 ‘열심’은 ‘젤로스’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는데 좋은 뜻으로는 경쟁, 열정, 열망, 열심 이라는 뜻이 있고, 나쁜 뜻으로는 질투, 악의, 분노의 뜻이 있습니다. 두 가지의 뜻을 포함하면 분노와 악의적인 마음을 갖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했다는 뜻이 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핍박하고’에 숨겨진 뜻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교회를 박해하되 다른 사람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박해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저지할 수 없는 강인한 자기 의지로 그렇게 한다는 뜻입니다.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의 표현은 바울은 악의적인 분노의 동기를 가지고 교회를 열심히 핍박하였는데 그 열심은 누구고 막을 수 없는 열심이었다는 뜻입니다. 당시 교회를 핍박하는 것 역시 바울에게 있어서는 율법을 준수하는 일이었고, 조상들로부터 물려 받은 전통적 유산이었기 때문에 교회를 핍박하면 핍박할수록 바울은 율법 준수를 완벽하게 하는 일인 동시에 전통적 유산에도 충실함을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자랑을 넘어 생명처럼 여겼던 율법과 전통 준수에 있어서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정도의 열정을 갖고 임할 수 밖에 없었고, 이와 같은 열정적인 교회 핍박은 바울에게 있어서 훈장과도 같고 머리에 쓰는 면류관과 같았습니다.


셋째 :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위에서 자신이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는 점과 교회를 열심히 핍박했다는 것은 바울 자신이 하나님을 향한 외적인 측면에서의 열심을 자랑한 것이라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는 유대교에 대하여 충실하기 위해 힘쓴 자신의 내면적 신앙의 자랑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율법을 열심히 준수한 사람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누구보다 잘 지켰을 뿐 아니라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전통적 규범까지도 철저히 지킴으로 인해 내면까지도 바리새인들보다 낫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밖의 외면 뿐만 아니라 내면 뼛속까지도 율법주의자요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바울의 자랑은 타의 추종을 넘어서는 수준임이 분명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스펙 중 어느 것 하나 보통 사람들이 쉽게 넘보거나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님에도 바울은 그와 같은 스펙을 출생의 배경부터해서 7가지를 나열하였습니다. 가히 주변에서서 자신들의 의를 자랑하고자 했던 바리새인들로 할 말을 잃게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자랑들을 바울은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올테면 따라와 봐’ 하는 식의 차별이나 우쭐한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그 자랑거리들에 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 7,8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렇다면 왜 바울은 그동안 자랑삼아왔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됐을까요?
사도바울은 그동안 자신이 신뢰하고 자랑했던 모든 것이 자신의 삶에 그리고 구을 얻는데 유익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유익이 아니라 해롭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화려한 스펙들로 자신의 신앙이 완성되고, 구원을 이루게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알아가고 믿는데 있어서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바울에게 고상한 것은 위에서 자랑했던 7가지 사항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 어느 하나 고상하지 않은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을 통해 바울의 눈에 비닐같은 것이 벗겨지게 됩니다. 그동안 자신이 보아왔던 고상했던 것이 더 이상 고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심은 우리로 바로 볼 수 있도록 빛을 비춰주시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빛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참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실상은 눈을 뜨고 있지만 진짜를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보고 판단하는 대부분은 우리를 후회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이 쇼핑하고 나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합니까? 선택하기 전에 우리는 눈의 능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신중하게 선택합니다. 색상과 크기 그리고 설명서와 먼저 구입했던 사람들이 남겨놓은 평가글도 유심히 읽고 난 후 선택 합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후회하는 일이 많습니다.


강영우 박사님을 우리가 잘 압니다. 그분에 관한 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강영우 박사님은 1944년 1월16일 양평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중학교 시절 축구공에 눈을 맞아 망막박리로 시력을 잃게 됩니다. 그로 인한 많은 고난의 과정들이 있었지만 강영우 박사님을 모든 사람의 존경하게 됨에는 바로 그 고난의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제가 눈을 고쳐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Yes’라고 하셨다면 저는 누나의 뒤를 이어 공장에 들어가 소년가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No’로 응답하셨고 맹인재활센터에서부터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까지 저를 훈련하였습니다. 그때 제 눈을 뜨게 해주셨다면 저는 기껏해야 공장장으로 끝났을 텐데 후에 저는 백악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주겠다고 안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수술을 권했지만 아버지는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그 거절의 이유는 내가 눈을 떠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을 육신의 시력을 잃었지만 그것 때문에 믿음의 진짜 시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눈을 가졌다면 절망만 봤을텐데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의 눈을 갖게 됨으로 해서 희망만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강영우 박사님은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백악관 종교, 사회봉사부문 자문위원으로 재직하게 되었고, 2012년에는 국민훈장 무궁훈장을 수여하게 됩니다.


가장 고상한 것, 가장 값진 것을 발견한 사람은 그동안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선택하는 것과 행동들이 바뀝니다. 진짜를 발견하고도 가짜에 목을 메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에 목을 메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진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가장 고귀한 것을 발견한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지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지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13:44-46).


어느 소작농이 자신이 소유한 밭이 없으니 부자에게 가서 사정을 합니다. 이 부자는 자기에게 가장 몹쓸 땅인 산비탈의 자갈밭을 빌려줍니다. 가난한 농부는 그것이라도 일궈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먹여살려야 했기에 열심히 돌을 제거합니다. 그러던 중 땅 밑에서 보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얼른 덮어두고 내려가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땅을 사고자 합니다. 땅 주인도, 주변의 사람들도 쓸모없는 땅을 사려는 가난한 농부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비아냥과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난한 사람은 기쁩니다. 가장 고상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강영우 박사님도, 사도 바울도 모두 진주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진주를 발견했더니 그동안 귀하다고 생각했던 자랑거리들이 배설물 정도로 여겨집니다.


2016년 20대 국회에 국회의원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 국회의원을 소개합니다.
박주민 국회의원의 별명은 거지갑 국회의원입니다. 하고 다니는 몰골이 거지와 같다하여 붙여진 별명입니다. 그는 항상 백팩을 메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치약과 칫솔 등 어디에서든 숙박을 할 수 있기 위한 준비 때문입니다.
한 번은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받고 선거 운동을 할 때입니다. 참모진들이 이력서에 대원외고 졸업한 것을 넣자고 했는데 본인은 반대했다고 합니다. 주변 참모들은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화려한 스펙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박주민 후보는 그것이 어떻게 나를 증명할 수 있겠느냐고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박주민 의원은 73년 생으로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학대학과 사법시험을 통과한 최고의 스펙을 지닌 몇 안되는 사람중에 한 명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화려한 스펙을 좇지 않고 자신이 발견한 가치인 ‘국민을 위한 삶’을 좇아 갑니다. ‘국민을 위한 삶’이 가장 고상한 일이어서 그전의 이력들은 그에게 고상한 것이 아니요, 그래서 자랑할 것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맨발의 성자 최춘선 할아버지, 울지마 톤즈 영화의 주인공으로 아프리카 오지 수단에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한 한국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그리고 오늘 본문의 바울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내 삶에 가장 고상한 것은 출생의 배경도, 특출한 학벌도, 탁월한 업적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고상한 것은 육체의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가장 고상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가장 고상한 것이 무엇인지 찾는 방법은 내가 지금 자랑하고 있는 것, 자랑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도 눈에 보이는 것에 고상함을 느끼고 있다면 우리에게도 다메섹 도상에서의 바울처럼 빛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삶의 현장인 우리들의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만나주시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