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편 1-6절]

작성일 : 16-05-2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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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시편 23편 1-6절
말씀 :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찬송가 486장의 가사입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2절과 3절의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저는 어려서부터 이 찬양을 부르면서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려서 이 찬양을 부르면서 받은 은혜의 근거는 종말론적 신앙에 가까웠습니다. 빨리 이 힘겨운 세상살이가 끝나고 천국에서 참 평안을 누리면서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찬양을 드렸습니다. 당시 모든 성도님들의 심정이 그와 같았습니다. 2절과 3절의 가사는 더욱 구구절절히 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지금은 힘들지만 참자. 주님께 갈 때까지, 천국에 갈 때까지 참자. 그때가 되면 나는 참 평안을 누리게 될거야’하며 때로는 힘겨운 삶을 배경으로 눈물을 흘리며 찬양드리곤 했습니다. 부분적으로 맞지만 이 찬양과 주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이고 잘못된 신앙입니다.


사람들이 천국의 기쁨을 죽어서부터, 죽어서 천국에 가야만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잘못된 신앙이고 믿음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에 대한 열매는 궁극적으로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죽어서만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경 어디에서도 기쁨과 평안을 약속하시면서 그 때를 ‘너희가 죽어서 천국에 오면’으로 정해놓으신 적이 없습니다. 모든 약속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언약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이 근심 많은 세상에 근심 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희가 죽을 때까지 참으라고 격려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평안을 누리고 쉼을 누리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근심을 덜어 놓는 훈련, 근심을 하나님의 평안으로 바꾸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127편 2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밤낮 없이 여러분들이 일하는 것보다 적절한 잠과 휴식을 얻으며 살아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만하는 것을 뜻으로 정하셨다면 그래서 잠도 못자고 온갖 업무적 스트레스만 받도록 하신다면 저와 여러분들의 육체적, 정신적, 감성적, 영적인 건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푸른 초장 맑은 물가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근심에서 벗어나 쉼을 얻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단지 우리가 쉬기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쉼과 평안, 그리고 일의 균형을 잡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일해야 할 때 일하지 않는 것은 게으른 것이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마찬가지로 쉬어야 할 때 쉬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불효입니다. 어떤 부모님도 자녀들이 눈 밑이 어두워지도록 피곤한 상태에서 계속된 일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쉼 없이 일만하다가 병들고, 평생을 근심과 염려, 불화와 갈등 속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저희들의 쉼과 재충전입니다. 쉬지 않는 것은 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고 불효이며 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열심히 일하듯이 열심히 쉬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쉬지 않고 일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에서 사역하면서 과로로 병원 신세를 진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근성은 근면과 성실함이니 그 정도로 사역을 하면 당연 최고의 사역자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과로할 만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왠지 쉬는 시간, 쉬는 날 다 챙기면서 사역하면 요령피우는 불성실한 사람으로 평가받을까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로케 하는 동기의 전부는 될 수 없지만 부분적인 이유인 것은 분명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많을 일을 하면 그것으로 나의 정체성이 정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기의 직업과 일의 양으로 정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정체성을 거기에 두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직업과 일의 양에 우리들의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가치를 우리가 계속해서 노를 저을 때만 인정해 줍니다. 그 인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이 두려워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잡고 있는 노를 놓지 않고 젓습니다.


포스코에서 정년퇴직하시는 성도님들 가정을 심방했었습니다. 그분들의 걱정은 쉰다는 것이었습니다. 퇴직금이 있어 당장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임에도 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쉬는 것을 무능력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에게 능력은 정년퇴직 되기 전에 다른 회사에 취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과로하는 진짜 이유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절대 사람들을 만족시켜 주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끝까지 쉬지 않고 달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 말씀입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는 낳으셨도다”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그는 뜻을 정하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를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저와 여러분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믿어진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신다면 저와 여러분은 쉴 수 있습니다. 쉬는 것에 대한이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이 아니라 쉼은 우리의 마땅한 일입니다. 오히려 쉼 없이 살아가는 것, 평생을 염려와 불안, 걱정과 근심,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쉬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과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당당함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좋아하시고, 내가 쉬기를 원하시는데 이런 나를 싫어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문제야.”


저와 여러분이 행복함에 있어서 꼭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바램을 모두 충족시킬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해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치있게 지으시고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고 경험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은 사단의 시험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천하만물을 다 너에게 주겠으니 나에게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거절하셨습니다.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세상을 얻는 것보다 자신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하를 얻는 것보다 우리에게 온갖 죄로부터 자유함과 쉼을 주는 것이 더 값지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태복음 6장 3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이 믿어지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이 믿어진다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 또한 믿어져야 합니다. 이 말씀이 믿어짐으로 여러분의 염려와 근심이 평안과 쉼이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곁에 가족이 있지 않습니까?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님을 다른 가정과 비교하는 것을 멈추시고 그 시간에 함께 차를 마시고, 대화를 시작하고, 마음을 나누고, 찬양하며,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소유하고 있는 차와 옆집의 차를 비교하지 말고 차에게 고마움을 가져 보세요. 그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우리의 행복이 시작됩니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우리가 이미 얻은 것으로부터 즐거움을 얻지 못합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열망으로 너무 분주해지기 때문에 누리지 못하고 누림을 통한 만족과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유에 의해 판단되지 않고 이미 존재로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소유에 집착하게 되면 늘 다고다고 하다가 삶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마음이 평온한 가운데 조금만 소유하는 것이 항상 분주한 것보다 낫습니다. 삶에서 가장 훌륭한 일들은 물건에 있지도 소유에 있지도 않습니다. 바로 존재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존재는 이미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것보다 귀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엿새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일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마찬가지고 쉬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일만하는 노동자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가정의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서 쉼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오늘은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에 우리는 우리의 몸을 쉬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쉬게하고 재충전케 해야 합니다. 우리는 관계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안식일은 관계를 위해 좋은 시간입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스트레스와 불안과 우울증은 우리가 응당 살아가야 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는 증상들입니다.


여러분들이 근심과 염려해가며 각종 스트레스를 받으며 과하게 일하려 하는 것이 이웃이 가진 것을 시샘하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멈추어야 합니다. 항상 더 많이 얻으려고 극심한 경쟁을 피해야 하고 그 상황에서 건짐 받기를 성령님께 간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아이들이 부모의 돌봄을 받고 있습니까? 자녀들이 부모를 떠났을 때 충분한 돌봄을 주지 않은 것이 후회되지 않겠습니까? 그 동안 자녀들이 부모님을 통해 평안과 쉼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괜찮습니까? 여러분들이 가정과 교회에서 쉼과 평안을 얻지 못해도 괜찮습니까? 여러분의 삶이 쉼과 평안 없이 평생 경쟁하듯이 소진해 버려도 괜찮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쉼이 필요합니다.


영혼이 쉼을 얻게 하십시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통해 쉼과 평안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누가 뭐라해도 쉼의 시간을 갖고 평안해 지겠다는 신앙적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목자가 되셔서 여러분을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길 원하십니다. 오늘, 그분의 안내를 받아 보겠다고 다짐해 보시면 어떨까요? 그분의 안내를 받아 쉼이 있고 평안이 있는 삶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근육이 지쳐있고, 신체적 피로가 쌓여있고, 감정이 메말라 있고, 영적인 피로로 영혼이 메말라 있다면 지금 여러분은 예수님을 목자로 인정해 드리며 그분의 안내를 받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