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오직 나의 자랑은 십자가 - 갈라디아서 6장 12-16절

작성일 : 16-01-1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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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직 나의 자랑은 십자가

성경 : 갈 6: 12 - 16 



우리 기독교를 상징할 수 있는 것은 여럿이 있습니다. 마굿간에 나신 예수님, 발을 씻기신 예수님, 기도하신 예수님,

가르치시는 예수님, 고치시는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 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를 기독교

를 상징합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인들은 반역죄나 극악한 죄를 제외하고는 십자가에 메달아 죽이지 않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주로 야만인들이

고안해 놓은 잔인한 것이기 때문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십자가에 죽이지 않지요. 유대인들 또한 나무위에

달린 자는 저주 받은 자라고 단정해 버리기 때문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십자가에 죽이지 않습니다.



신명기 21장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위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상징이 되고,

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숱한 박해를 받아가면서도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성경 예언의

핵심이며, 예수님 가르치심의 핵심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막8:31).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을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5). 



또한 사도들의 선포의 핵심도 십자가였습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교훈이 아니라 사도들의 전한 핵심은 십자가 사건이고,

십자가였습니다. 제자들은 산상수훈을 강조하거나 천국의 비유, 씨 뿌리는 비유를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물 위를 걸은

것도, 오병이어의 기적도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은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했으며, 자랑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겠습니까.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1-2).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로마인들의 사형 틀을 자랑으로 삼는다는 것은 역설적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치욕스럽고 저주적인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도들과 바울에게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저주의 십자가가 기둥과

터전이 되었으며 승리와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자랑이 되는 이유는 사죄와 용서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며, 사랑을 가르쳐

주셨고, 보여주셨습니다. 불화하면 불행합니다. 불화는 용서의 미덕으로 극복할 수 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삶에 불화를 끊고 최고의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지혜의 상징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이해가 되고, 용서가

쉬워집니다. 죄는 상대를 업신여기도록 나를 교만하게 합니다. 내가 상대보다 높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용서는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혼을 불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사람은 하나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 자신보다 더 사랑하셨습니다. 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 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미워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합니다.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때입니다. 반대로 사람의 가장 큰 불행은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사업의 성공보다 더 행복하며, 사업의실패보다 더 불행하기도 한 것이 사람 속에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가치인 사람을 사랑할 때 최고의 행복을 경험하고, 최고의 가치인

사람을 미워하고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때 최고의 불행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사랑하는 대상인 사람을 사랑

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행복해 집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귀중히 여김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바울의 행복은 학문, 업적, 물질, 성취욕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자기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바울이 변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들

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더욱 큰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는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아닙니다. 사람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찰나의 만족은 얻을 수 있지만 뒤돌아서면 불만족하게 됩니다. 바울은 사람을 잡아 옥에 가두는 일

로 하나님을 위한 충성과 자신의 만족을 삼으려 했지만 예수님께서 방향을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옥에 가두겠다는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용서하기 시작합

니다. 그에게 옥에 가둘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감옥인 지옥으로부터 사람을 건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삶의

방향을 바뀐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을 가두는 일보다 자유케 하는 일에 비로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한 최고의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어떤 것도 사람을 위한 바울의 섬김을 막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합니다. 죽음도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에 대한 긍지로움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가장 떳떳할때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용서하고 돕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할 때 사람의 가치는 미움에 있지 않고

사랑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런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

도록 한 십자가는 자랑거리이며 영광 그 자체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의 최고의 행복은 사람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것을 알게 해 주는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십자가 사랑은 하나님 사랑이며 사람 사랑입니다. 그 삶을 실천하는 자는 행복한 자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내가 행복하니 가정이 행복합니다. 가정이 행복하니 세상 천지의 삶이 행복해 집니다. 감옥조차라도 바울은 그 행복과

감사를 누립니다. 십자가를 통해 사람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다. 그리하여 십자가가 우리의 자랑이 되도록

하는 은혜가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