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평생 조연같지만 주연같은 삶을 살아가는 아내요 어머니인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아내가 웃어야 남편이 웃고, 엄마가 웃어야 자녀가 웃습니다.
아내와 엄마인 여러분의 웃음은 가정을 웃음짓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각박해질수록 남편과 자녀들은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어머니의 진정한 성경적 회복 없이는 아버지의 회복도 없고, 자녀들의 회복도 불가능합니다. 한 여성이 행복한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어야 가정을 회복시키고 교회의 덕을 세우며 더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작성일 : 17-04-28 12:15
자녀를 완성하는 엄마 vs 망치는 엄마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07  
TV 프로그램 중에 ‘내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문제의 아이를 전문가들과 함께 지켜보면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해 줌으로 건강한 아이의 모습을 찾아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상한 것은 주제가 ‘아이가 달라졌어요’이지만 전문가들은 아이만을 보지 않고 동시에 부모를 관찰하고 원인을 규명하여 올바른 양육법을 제시해 줍니다.


거친 말을 하는 것은 나이와는 무관한 듯 대여섯 살이 되어 보이는 아이의 입에서 어른들 조차 입에 담기 어려운 상스러운 욕설을 하는 아이, 하루 종일 이유 없이 떼를 쓰고 우는 아이, 할아버지 할머니 구분 없이 욕설과 폭행을 일삼는 아이, 유치원의 친구들과 잘 놀다가도 갑작스럽게 행동이 변하여 친구들을 조폭과 같은 행동으로 폭행하는 아이, 말리려는 선생님을 향해 물건을 집어 던지는 아이 등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아이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아이들이 소개됩니다.


이런 모습의 아이들의 녹화된 영상을 보는 엄마는 결국 눈물을 보입니다. 이유는 문제적 행동을 일삼는 아이에게는 예외 없이 그런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 제공자가 바로 부모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아이는 없다. 단지 문제의 부모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무섭게 다가오는 듯 합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진단을 이렇게 합니다.

“다 어머니 때문입니다.”


한 글을 소개합니다.
사형 집행을 앞둔 사형장. 형이 집행되기 직전 판사가 사형수에게 마지막 소원을 물었다.
“마지막으로 제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도 역시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자기 어머니를 찾게 되는구나 싶어 판사와 집행관들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마침내 사형수의 어머니가 도착했다.
“아이고, 이 녀석아!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된 거냐?”
어머니는 통곡을 하며 아들을 부둥켜안으려고 두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사형수는 느닷없이  달려들어 어머니의 손을 입으로 물어뜯었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세상에 자기 어머니 손을 물어뜯는 놈이 어디 있어? 막돼먹은 인간 같으니······.”
놀란 집행관이 사형수와 어머니를 떼어내며 소리쳤다. 그러자 사형수는 어머니를 향해 증오에 찬 눈빛을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내가 이렇게까지 된 것은 다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그때 바로 저 손으로 저를 야단치셨더라면······.”
어릴 때부터 손버릇이 나빴던 사형수는 어느 날 학교에서 친구의 책을 훔쳐 왔다. 못 보던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본 그의 어머니가 물었다.
“그거 처음 보는 책인데 어디서 났니?”
“우리 반 아이 건데 그냥 가져왔어요.”
“그래.”
어머니는 그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그는 사탕 가게에서 사탕 몇 알을 훔쳤고, 점점 그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도둑질에 재미를 붙였다. 배짱도 커졌다. 그렇게 몇 십 년이 흘러 그는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끝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고 말았다.


물론 모든 자녀들의 잘못된 결과가 전적으로 부모님에게만 있다고 몰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적인 양육, 교육방식, 대화방식들이 자녀에게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 할 만큼 비중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부모님의 자녀 대하는 방식의 기초와 기본은 사랑입니다. 모든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잘못된 삶의 결말을 목표로 자녀의 행동을 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작은 잘못들을 그대로 덮어둔 일이 쌓여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부모님 사랑 표현의 방식과 차이에 따라서 자녀의 미래를 완성할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습니다.


나무를 옮겨 심은 적이 있었습니다. 관심이 가고 손이 가는 만큼 나무에 정성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바쁜 한 때를 지나 한참에서야 그동안 돌보지 못한 나무를 보게 됐습니다. 관심이 없던 만큼 약해 보이고 말라보였습니다. ‘잘 해 줄게’하는 마음으로 비료를 주었습니다. ‘너무 조금 줬나’ 하는 마음이 그동안 미안했던 마음을 보여주는 듯 했고 결국 비료를 내 마음에 족하리 만큼 주었습니다. ‘많이 줬으니 잘 자라겠지’. 어떻게 됐을까요? 나무는 지나친 영양분에 결국 타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미안한 마음,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나무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자녀의 몫이 아닌 부모의 몫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자녀들에 대한 우리 사랑의 지식과 방법을 돌아보지 않으면 99% 자녀를 망치는 부모가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