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아버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열정이 있습니다. 불타는 열정, 거룩한 열정, 쉬지 않는 열정, 비전에 이끌리는 열정, 그 위대한 열정을 품고 아버지로서의 역사를 써 왔습니다. 눈물과 땀을 흘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써 왔던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열정과 헌신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나 홀로 꿈을 꾸면 그것은 단지 꿈으로 끝날 수 있지만,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꿈은 잠을 자야 꾸지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잠에서 깨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남편으로 아버지로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우십시요. 그리고 기도하며 성취를 향해 걸음을 내딪으십시요

인생에서 남자로 태어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취도 중요하지만 존경받는 남편이요,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 비전을 이루어 가도록 빌립보 교회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성일 : 16-12-26 01:42
창조성과 근면함을 가르친 아버지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90  
헨리 포드- Henry Ford, 1863-1947


에드셀 포드의 아버지, 헨리 포드 2세의 할아버지. 디트로이트의 외곽, 농부의 아들로 자란 헨리는 자동차 산업의 위대한 인물 가운

데 한 사람이 되었고 포드 가족 일원이 오늘날까지도 경영하는 거대 기업을 일구었다. 에드셀 포드는 어릴 때부터 풍부한 예술적

감수성을 보였다. 그의 아버지이자 자동차 업계의 대부인 헨리 포드는 그것을 발견하고 자랑스럽게 지켜보았다. 헨리 포드는 아들

에드셀을 1910년에 화가 얼빈 베이컨에게 소개시켜 주었했다. 숙련된 엔지니어이기도 했던 에드셀은 일을 시작하고 얼마 동안은

실린더와 점화 플러그와 씨름했다. 그의 아버지 헨리는 이런 아들을 위해 여러 지역에 연구실을 마련해주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에드셀은 1915년도 미국 횡단 주행실험 중에 자동차가 고장을 일으키면 소매를 걷어 붙이고 아버지의 모델 T 자동차를

고치곤했다.


헨리의 외아들인 에드셀은 1916년에 엘리노어 로우티아클레이와 결혼하여 당시 부유하고 젊은 디트로이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인디언빌리지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이듬해 9월에 헨리 포드 2세가 태어났다. 둘째 아들 벤슨과 딸 조세핀, 막내 아들

월리엄 클리에가 그 뒤를 이어 태어났다.


1918년은 포드사의 모델 T가 생산되기 시작한 지 십년이 되는 해였고, 이 차는 미국에서 주행 중인 차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해 12월 31일에 헨리는 포드사의 경영권을 당시 28살이었던 에드셀에게 물려주었다. 당시 에드셀은 학교를 졸업하고 6년 동안

아버지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에드셀의 첫 번째 과제는 막중했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게 해결했다. 회사 경영권을 다시 확보

하기 위해 닷지 형제들과 다른 소주주들로부터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 그의 과제였다. 1919년 구조조정 뒤에 에드셀은 포드사의

주식 40퍼센트 이상을 소유하게 되었다.


에드셀이 포드사의 사장직을 수행하게 되자 헨리는 아들과 함께 루즈리버공장을 방문하여 자동차를 살펴보고 그린필드빌리지를

방문하며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곤 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빌리지의 플림톤 저택에서 등받이가 높은 오래된 나무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을 헨리는 특별히 좋아했다. 그는 이 사진을 크리스마스 카드로도 사용했다. 이 사진은 두 사람이 바랬던 친밀함과 따듯함,

그리고 동반자의 모습을 가장 잘 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매일 몇 시간씩 함께 대화를 나누었고 일을 했다. 두 사람이 만나지

못 할 경우에는 전화로 대화를 나누었다. 페어레인에 위치한 헨리 포드 집에 있는 서재와 디트로이트 반대편에 있는 에드셀의 서재

사이에는 직통 전화가 놓여 있었고 종종 밤늦게까지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에드셀은 판매와 영업과 회계 업무도 직접 챙겼을 뿐 아니라 포드 자동차 디자인에도 관여했다. 그가 집중했던 디자인 영역은 모델

T의 외부나 내부 운전사 좌석 배치나 액세서리의 내용 등 부차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자동차의 미적인 부분들을 에드셀에게 맡겼던

헨리의 관습에서 유래된 것이다. 만약 경영자들이 헨리 포드에게 에드셀이 내린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헨리는 에드셀이 회사

를 경영하는 만큼 그의 뜻을 따르라고 답했다. 1927년 모델 T의 판매가 곤두박질쳤다. 이에 새 모델이 필요하게 된 헨리와 에드셀은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헨리는 엔진과 여러 부속품들을 디자인했고, 에드셀은 차체 디자인과 기아 변속 장치를 디자인했다. 그 결과

는 대성공을 거둔 모델 A로 1931년도까지 생산되었다.


1936년 헨리와 에드셀은 복지증진을 위해 포드재단을 설립했다. 헨리는 자신이 소유한 주식 가운데 투표권이 있는 주식을 가족들

에게 분배했고 투표권이 없는 주식을 재단에 기부했다. 재단은 급속도로 성장하여 1950년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에드셀의 아들 헨리 2세는 어릴 때 경제적인 문제로 걱정을 하거나 가족의 사업에 대해 걱정할 일이 거의 없었다. 헨리 2세는 공부와

더불어 가족과 함께 보내는 휴가, 영국 황태자 같은 외국의 귀빈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디트로이트대학 부설학교의 모든 학생

과 교사들은 헨리 2세가 마치 왕족이라도 되는 듯 경이에 찬 눈으로 그를 보았다. 어떤 이들은 그가 ‘응석받이’라고 생각했지만 헨리

2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디트로이트대학 부설학교를 졸업한 뒤에 그는 동부 해안에 있는 기숙학교인 핫치키스에 진학했다.

이 학교는 부유한 집 자녀들의 아이비리그대학교 진학을 돕기 위한 예비학교였다. 특권을 누리는 삶은 그곳에서도 계속되었다.

에드셀은 종종 아들에게 전보 telegram를 보내 그를 리츠칼튼호텔로 데리고 갈 운전사가 특정 시간에 학교 정문에 대기할 것이라고

말해주곤 했다. 핫치키스를 졸업한 뒤에 그는 예일대학교에 진학하여 학업에 열중했고 그의 아버지는 학업성취를 인정해주고 칭찬해

주었다. 이후 교통사교에서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시인했던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기 시작했다.



1940년 7월 헨리 2세는 앤 맥도넬과 결혼했다. 아버지 에드셀은 결혼이 아들을 더욱 안정되고 성숙하게 할 것을 믿고 이들의 결혼

을 승낙했다. 그리고 그는 해군으로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통해 더욱 성숙해졌다. 1943년 5월 포드 가족에게 재난이 닥쳤다. 에드셀

이 심장 관련 질병으로 갑자기 숨진 것이다. 당시 79세였던 아버지 헨리가 잠시나마 경영 일선에 다시 나섰지만 헨리 2세가 해군을

제대하고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그 뒤 2년 동안 전쟁물품 공급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일어나는 성장통으로 회사는 어려움을 겪었

다. 1945년 헨리 2세는 사장직에 취임했고 그로부터 2년 뒤에 그의 할아버지가 소천했다. 포드사가 부진을 보이거나 망하는 것을

결코 보지 않기로 강한 결심을 한 헨리 2세는 ‘마법사 청년들’ 이라 불리는 젊고 유능한 경영진을 영입함으로써 포다사를 전 세계에

서 네 번째로 규모가 큰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1873년 10살의 나이였던 헨리 포드는 일반 증기기관을 체인으로 바퀴와 연결해서 자신의 첫 자동화를 만들었다. 이것에 매력을

느낀 헨리는 자신의 관심을 좇아 가족의 농장을 떠났고, 1891년 에디슨전기회사의 엔지니어가 되었다. 승진을 거듭하여 헨리는

휘발유 엔진을 개인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시간과 자금을 얻게 되었다. 실험을 거듭한 결과 그는 1896년도에 사륜 자동차를 만들

어 냈다. 그리고 더 많은 실험과 시도와 실수와 용기와 의지로 헨리 포드는 사룬 시스템을 개선하여 마침내 포드사와 그 유명한 모델

T 자동차를 만들었다. 모델 T 자동차 제작과 자동 제작 공정 주 5일 근무와 평화선박 등을 통해 헨리 포드는 인간이 목표를 성취하는

데 있어 능력의 한계가 거의 없음을 보여 주었다. 격려와 자상한 보살핌으로 헨리는 자신의 외아들인 에드셀이 자신이 창립한 회사

의 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양육하였으며 훗날 자신의 손자가 그 자리를 잇는 것을 보았다. 미국의 여러 세대를 변화시키고 이동

의 편리를 제공한 직업윤리를 헨리 포드는 가족에게 모범으로 보이고 인도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 3:23-24


-[아버지의 영향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