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아버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열정이 있습니다. 불타는 열정, 거룩한 열정, 쉬지 않는 열정, 비전에 이끌리는 열정, 그 위대한 열정을 품고 아버지로서의 역사를 써 왔습니다. 눈물과 땀을 흘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써 왔던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열정과 헌신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나 홀로 꿈을 꾸면 그것은 단지 꿈으로 끝날 수 있지만,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꿈은 잠을 자야 꾸지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잠에서 깨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남편으로 아버지로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우십시요. 그리고 기도하며 성취를 향해 걸음을 내딪으십시요

인생에서 남자로 태어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취도 중요하지만 존경받는 남편이요,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 비전을 이루어 가도록 빌립보 교회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성일 : 16-12-19 01:07
자신에게 맡겨진 것들의 선한 청지기가 되도록 가르친 아버지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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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깁슨 왈튼- Thomas Gibson Walton, 1892-1984
월마트 Wal-Mart Stores, Inc.의 창업자 사무엘 무어 왈튼의 아버지. 토마스 깁슨 왈튼은 자신의 아들에게 절약과 검소, 근면을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기업인 월마트의 창업자 사무엘 무어 왈튼을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샘 (사무엘의 애칭)은 자신이 가족의 보호만 받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 도움을 주어야 함을 배웠다. 그는 7살 때 월간지 구독권을 팔았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에 다닐 때까지는 신문을 배달했다. 그리고 토끼와 비둘기를 길러 팔기도 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그는 1달러의 소중한 ‘가치’를 배웠다. 대공황 기간에 살았던 경험을 통해 돈은 버는 것이지 쓰는 것이 아님을 배웠다. 「샘 왈튼 :미국산」이라는 전기에서 그의 동생 버드는 이렇게 적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왜 그렇게 보수적인지 이해하지 못 한다. 사람들은 수십 억 달러의 부자가 낡은 트럭을 타고 다니고, 월마트에서 자신의 옷을 사고, 비행기 일등석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을 우리를 그렇게 키우셨다.”


샘 왈튼은 아버지 토마스 깁슨 왈튼과 어머니 낸시 리 왈튼의 아들로 오클라호마주의 킹피셔에서 1918년 3월 29일에 태어났다. 그의 동생 버드는 1921년에 태어났다. 샘의 아버지는 농사로는 가족을 부양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1923년에 미주리에서 주택담보대출 일을 새롭게 시작했다. 토마스 깁슨 왈튼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는 근면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말이나 당나귀나 소나 집이나 공장이나 자동차나 할 것 없이 물물교환이나 파는 것을 즐겨했다. 한번은 킹피셔의 자신이 살고 있는 농장을 오메가에 있는 농장과 바꾸기도 했다. 또 언젠가는 가족들에게 고기를 먹이기 위해 자신의 시계와 바꾸기도 했다. 협상에 능했던 그는 상대방이 결코 화를 내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을 만큼 가격을 흥정하고 협상할 줄 알았다. 때때로 아버지 토마스는 터무니 없는 제안으로 아들 샘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장사에 수완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토마스는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여 성공하려는 야망이나 확신은 가지지 못했다. 샘이 자랄 때 토마스는 은행가, 농부, 농장 대출 평가사, 보험 설계사와 부동산 중개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대공황 기간 중 그는 자신의 형의 부동산대출회사의 일부였던 메트로폴리탄생명보험에서 근무 했다. 그는 메트로폴리탄의 농장대출 관련 업무를 맡았다. 1929년부터 1931년까지 그는 수백 개의 농장을 회수했다. 자신의 농장을 오랫동안 소유했던 사람들에게 토마스는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야 했지만 그는 그들이 가능한 한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조심했다. 샘도 종종 아버지를 따라 나서곤 했는데 이런 안타까운 광경들은 그에게 강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서 성장하여 세상에 나왔을 때, 그는 이미 1달러의 소중함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콜롬비아의 힉크만고등학교를 다닐 때, 샘은 농구를 하고 미식축구팀에서 쿼터백을 하는 등 운동을 아주 잘 했다. 그가 속했던 팀이 1935년도에 주 우승팀이 되기도 했다. 샘은 또한 고등학교 2학년에는 부회장으로, 3학년에는 회장으로 학생회를 했다. 그는 우등생이었을 뿐 아니라 졸업할 때는 ‘가장 다재다능한 학생’으로 뽑히기도 했다. 대학생활을 통해 샘은 자신의 근고 정신과 돈에 대한 생각을 더울 다듬어갔다. 그는 미주리-콜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ROTC 장교를 했다. 대학을 다닐 때 그는 식사를 무료로 하기 위해 식당 청소를 했다. 그는 또한 최우수 졸업반 학생들만의 비밀 동아리에 가입 요청을 받기도 했다. 졸업할 때 그는 졸업생의 ‘영원한 대표’로 뽑혔다. 대학을 졸업한 지 삼 일만에 그는 아이오와주의 데스 모이네스에 있는 JC페니 J.C.Penney Company, Inc. 에 수습사원으로 취직하여 75달러를 받았다. 1942년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될 것을 예측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잠시 오클라호마주 툴사 근처에 있는 듀퐁 병기창에서 근무하였는데, 이곳에서 헬렌 롭슨을 만나 1943년 2월에 결혼했다.


군대에서 잠시 근무한 뒤에 샘은 백화점을 경영하길 원했지만 일단 다용품점Variety Store을 시작하기로 했다. 장인의 도움과 군 복무 시적 저축해두었던 돈을 합해서 왈튼은 알칸소주의 뉴포트에 위치한 벤 프랭클린 다용품점을 인수했다. 이 점포를 통해 그는 성공에 필수적인 많은 개념들을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샘은 저가의 다양한 상품을 진열대에 끊임없이 진열했고 다른 가게들보다 늦게까지 장사했다. 또한 그는 최저가로 공급하는 사람으로부터 도매로 구입하여 할인 판매를 개척했다. 이것은 자신의 소비자들이 돈을 절약 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자신의 매출도 증가시켰다. 샘의 점포가 성공적이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편리하게 찾아올 수 있는 점포의 위치였다.


1951년 건물주의 요구로 가게문을 닫아야 했는데 뉴포트에서 적절한 장소를 구하지 못 하자, 왈튼을 알칸소주 벤톤빌의 다용품점으로 옮겼다. 이 점포는 벤 프랭클린의 체인점이 있었는데, 그는 이 점포를 ‘왈튼 파이브 앤 다임’으로 불렀다. 샘은 벤톤빌에서 남쪽으로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페이테빌에 또 다른 다용품점을 열었다. 그는 이 점포가 체인점이 아니었지만 벤톤빌의 점포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 그곳은 첫 번째 점포처럼 성공적이었다. 샘은 자신을 도울 지점장을 고용한 뒤에 그 점포의 이익의 일부를 주었다. 이것 역시 첨단 경영기법이었다. 또한 왈튼은 계산대를 출구 근처에 위치하는 것을 최초로 고안했다. 고객들이 구매할 모든 물건을 여러 계산대에서 가격을 치루지 않고 한곳에서 한꺼번에 계산할 수 있도록 했다. 왈튼은 또 자신의 모든 점포들이 청결하고 밝아야 한다고 믿었고 직원들의 충성심을 높이기 위해 모든 직원들이 이익 분배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샘은 자신의 형과 장인, 처남의 도움을 받아 더 많은 벤 프랭클린 상점들을 열었다. 1962년 샘과 그의 형은 알칸소주와 미주리주와 캔사스주에 있는 16개의 다용품점을 소유하게 되었다. 첫 번째 월마트 점포는 1962년 알칸소주의 로저스에서 개점되었다. 이전 점포에서 증명된 경영 방법들을 시행에 옮기면서 1970년 5개 주에 38개 점포를, 1980년 11개 주에 330개 점포를, 1985년 22개 주에 859개 점포를 개설했다. 월마트는 마침내 세계에서 제일 큰 소매점이 되었고, 2004년에는 백오십만 명이 넘는 종업원이 일하게 되었다.


창립 정신을 바탕으로 월마트는 지역 불우이웃을 위해 자선 판매를 실시하고 있으며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샘은 월마트와 관련해서 자신이 구두쇠인 것을 시인한다. 그는 매출액이 400억 달러에 이를 때까지 업무용 비행기를 구매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샘과 그의 직원들은 출장 중 홀리데인 인, 라마다 인, 데이즈 인 등 저렴한 숙박시설에서 묵고, 값싼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어려웠던 시절을 통해 토마스 깁슨 왈튼은 아들 샘 왈튼에게 1 달러의 소중함을 가르쳤다. 또한 검소한 삶이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가르쳤다. 아들에게 절약을 가르침으로 모든 월마트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생활필수품에 미국인들이 수백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는 철학과 노동 윤리를 주입시켰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 5:19


-[아버지의 영향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