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아버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열정이 있습니다. 불타는 열정, 거룩한 열정, 쉬지 않는 열정, 비전에 이끌리는 열정, 그 위대한 열정을 품고 아버지로서의 역사를 써 왔습니다. 눈물과 땀을 흘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써 왔던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열정과 헌신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나 홀로 꿈을 꾸면 그것은 단지 꿈으로 끝날 수 있지만,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꿈은 잠을 자야 꾸지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잠에서 깨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남편으로 아버지로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우십시요. 그리고 기도하며 성취를 향해 걸음을 내딪으십시요

인생에서 남자로 태어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취도 중요하지만 존경받는 남편이요,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 비전을 이루어 가도록 빌립보 교회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성일 : 16-11-07 12:13
원수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가르친 아버지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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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가르친 아버지


네이트 세인트- Nate Saint, 1923-1956
스티브 세인트의 아버지. 선교사였던 아버지 네이트 세인트가 남미 에콰도르 와오다니 부족에게 창에 찔려 순교 당할 때 스티브 세인트는 겨우 5살이었다. 아버지의 희생은 아들 스티브가 성인이 되어 이 부족에게 다시 돌아가서 그들과 함께 살도록, 그리고 아버지를 살인한 사람자초도 용서하고 사랑하도록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네이트 세인트는 비행을 좋아했다. 그는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에 비행기 조종 훈련을 받았고, 자신의 조종 기술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조국을 위해 사용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미국의 위튼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에게 비행을 사랑하는 마음과 선교의 부르심이 너무나도 강해서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다. 그는 항공선교회에 가입했고 1948년도에 아내인 마즈와 함께 에콰도르에서 사역하기 위해 갔다. 그곳에서 그는 버려진 유전탐사캠프를 활주로를 갖춘 항공선교센터로 만들었다. 이 센터를 중심으로 이들 부부는 오지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약과 편지와 기타 필요한 물건들을 수송했다.


이 부부는 1950년에 에콰도르에서 아들 스티브를 낳았다. 스티브는 걷기 시작할 때부터, 자신의 집과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활주로 사이에 놓인 얕은 흙 언덕 위에 앉아 아버지가 비행기를 이륙하여 정글로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가 올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아버지의 사역에 늘 위험이 도사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행 중, 네이트는 깊은 정글에 사는 아우카족 후에 와오다니족으로 바꿈을 발견했다. 1955년 9월, 네이트는 동료 선교사인 짐 엘리엇과 에드 맥컬리, 피터 플레밍과 함께 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였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로저 유데리안도 이들과 합류했다. 네이트는 이 부족이 문명으로부터 고립된 것을 알았다. 물론 이들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에 대해서도 알 리가 없었다. 선교사들은 시간을 두고 체계적으로 이 부족에게 다가갈 계획을 세웠다. 우선 네이트와 동료 선교사들은 비행기에 바구니를 연결한 뒤에 ‘머세티’ 라 불리는 정글 벌목용 칼과 옷가지를 넣어 선물로 내려주었다. 이 부족은 선물을 받게 되자 무척 좋아했다. 약 3개월 동안 이처럼 선물을 주고받은 다음, 선교사들은 이 부족을 직접 만나기로 결정했다. 1956년 1월 3일, 이들 선교사는 강변 모래밭을 활주로 삼아 착륙한 다음 이들의 정착지로부터 약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임시 숙소를 마련했다. 이 부족과의 첫 해후에 선교사들은 적잖은 기대를 가렸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그로부터 5일 뒤, 선교사들은 모두 날카로운 창과 머세티로 무장한 아우카족 전사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순교 소식이 선교센터로 전해지자, 스티브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게 아버지가 다시는 집에 돌아올 수 없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야만 했다.


스티브의 고모인 레이첼은 자신의 동생과 여러 신실한 선교사들의 순교에도 불구하고 뒤로 물러나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 부족과 함께 살면서 이들에게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의 구속의 사랑에 대해 전했다. 그 결과, 1964년 즈음에는 아우카족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 되었고 부족의 이름도 와우다니로 바꾸었다. 이것은 스티브의 고모인 레이첼이 동생의 순교를 통해 이 부족과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느끼고 에콰도르에서 쉬지 않고 이들에게 선교한 결과이다. 스티브는 이 부족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고모의 모습을 보았을 뿐 아니라 이 부족의 기독교 신앙이 정말로 거짓 없는 신실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별히 자신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바로 그 강변에서 살인에 가담했던 키모와 시아위에게 스티브가 세례를 받은 날은 정말 뜻 깊은 날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고모가 보여준 신앙의 모범처럼 이제 14살 스티브도 이들을 더 이상 증오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스티브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94년 자신이 사랑하는 고모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에콰도르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그의 고모는 평생 동안 와오다니족과 함께 살면서 사역했다. 와오다니족은 고모의 빈자리를 스티브가 채워주기를 요청했다. 이들은 외부 세계와 안전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스티브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미국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많은 기도와 고민 끝에, 그와 그의 가족은 에콰도르 정글로 이주했고 일 년 반 동안 살았다. 스티브의 목표는 이 부족이 현대 사회에서 생존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음을 깨달았다. 단순한 와오다니족의 생활 방식과 이들의 변화된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스티브는 이들의 문화를 마음 깊숙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 년 반 동안, 이들과 함께 살면서 스티브는 민케이라는 부족 원로와 친하게 되었고 아버지 같다는 느낌까지 갖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수십 년 전에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었다.


스티브는 저서 「창의 끝」End of the Spear에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민케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는 나를 친아들처럼, 그리고 자기 부족민처럼 여겼다. 그들은 분명 악을 행했지만, 하나님은 그 악을 선하게 바꾸셨다. 역사를 고쳐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그 사건으로 인해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동시에 나는 지난 50년 동안 펼쳐지는 이야기를 맨 앞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이렇게 끔찍스러운 사건을 믿기 어려울 정도의 놀라운 이야기로 만들어 가실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다섯 명이 죽기를 각오했기에, 이 부족이 모든 사람이 살 기회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티브와 민케이는 전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전하고 있다. 스티브는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도록 훈련하는 새 기술들을 개발하는 기관인 ‘I-Tec’를 설립했다. 예수님을 모르던 한 야만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네이트 세인트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아야 했다. 하지만, 그 희생과 이후 많은 수고를 통해 와오다니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들인 스티브의 가족이 되었다. 원수를 사랑함으로 네이트 세인트는 자신의 아들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음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


[아버지의 영향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