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아버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열정이 있습니다. 불타는 열정, 거룩한 열정, 쉬지 않는 열정, 비전에 이끌리는 열정, 그 위대한 열정을 품고 아버지로서의 역사를 써 왔습니다. 눈물과 땀을 흘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써 왔던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열정과 헌신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나 홀로 꿈을 꾸면 그것은 단지 꿈으로 끝날 수 있지만,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꿈은 잠을 자야 꾸지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잠에서 깨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남편으로 아버지로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우십시요. 그리고 기도하며 성취를 향해 걸음을 내딪으십시요

인생에서 남자로 태어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취도 중요하지만 존경받는 남편이요,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 비전을 이루어 가도록 빌립보 교회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성일 : 17-04-09 07:04
자녀의 밝은 미래를 예견해준 아버지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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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밝은 미래를 예견해준 아버지

제임스- James R. Jordan, 1936-1993
마이클 조던의 아버지. 제임스 R. 조던은 자신의 아들이자 지금까지의 농구선수 중에서 가장 위대한 NBA 스타인 마이클 조던의 가능성을 예견함으로 영향력을 미쳤다.


마이클 조던은 1982년도 전미 대학농구대회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그는 이 경기가 자신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알았지만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미처 몰랐다. 그때 마이클은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1학년 선수였고 농구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패틀릭 어윙이 뛰는 조지타운대학교와 경기를 벌이고 있었다. 마이클과 동료들이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가는 중에 마이클은 잠시 잠이 들었고, 이때 자신이 결승골을 넣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깬 마이클은 아주 편안히 차 안에 앉아 자신이 경기에서 영웅이 되는 것을 그려보았다. 그는 자신이 결승골을 넣는 장면을 상상하며 그를 바라보는 동료 선수 제임스 워디와 샘 페킨스와 딘 스미스 코치의 표정을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마이클은 결승골을 넣을 때가 실력 있는 조지타운대학과의 경기인지 아니면 다른 때에 다른 대학과의 경기인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조지타운대학을 이긴 뒤에 마이클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꾼 꿈에 대해 말했다. 마이클의 아버지 제임스는 잠시 생각한 후에 아들에게 앞으로의 삶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임을 말해 주었다.


마이클은 아버지가 단순히 자기를 격려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가 마이클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마이클은 농구계에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할 때 아버지의 이 말을 기억했다. 농구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을 뿐 아니라 가장 위대한 운동선수라는 찬사를 받은 마이클 조던의 인생은 정말 변했다. 「농구 사랑을 위하여 : 나의 이야기」라는 자신의 책에서 마이클은 이렇게 적었다.


“농구선수인 나를 생각하고, 내 출신을 생각하고,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생각하고, 지금까지 성취한 모든 것들을 고려할 때, 그 시합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음을 깨닫게 된다. 농구만이 아닌 내 모든 인생이 바뀌었다. 아버지는 내가 미처 보지 못 했던 것을 예견하셨다. 처음에 나는 아버지가 나의 성궁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동기를 불어 넣어주시려고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다. 나는 아버지가 누구도, 나를 포함해서 시카고불스팀도, 내게 무슨 일이 있을지 몰랐던 것들을 보셨다고 믿는다. 나는 이것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믿는다.”


마이클이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한적한 마을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윌밍톤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으로 이사한 다음 이들은 자녀들에게 땀의 값진 대가를 보여주려는 듯 열심히 일했다. 마이클은 사우스캘리포니아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했지만, 농구선수로서 장학금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장학금을 제안한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 진학했다. 1982년 전미 대학농구대회가 끝난 뒤에 조던은 올해의 선수에 후보로 추천되었고, 이때부터 농구선수로서의 그의 화려한 경력이 시작되었다. 1984년 나이스미스 올해의 대학선수상을 수상한 다음 그는 학교를 중퇴하고 미국 프로농구 신인선발에 참여했고, 일 회 추첨에서 세 번째로 선택권을 받은 시카고불스에 스카우트 되었다. 그해에 그는 미국 농구팀에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 주었다. 1984년 가을과 1985년 봄 시즌에서 그는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여러 가지 개인 신기록을 갱신하고 여러 상을 수상하면서 농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시기에 마이클과 그의 팀 시카고불수는 미국 프로농구 삼년 연속 우승을 처음 달성하는 위업을 낳았다.


1993년 7월 23일 마이클의 아버지인 제임스 조던은 친구의 장례식에 참여했다가 돌아오던 중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그는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노스캐놀라이나 럼버든 근처 95번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쉬고 있었는데, 그 지역의 불량배들이 제임스 조던의 가슴에 총을 쏘고 마이클이 선물로 사준 렉서스 자동차를 훔쳤다. 이들은 제임스 조던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전화를 몇 통 걸었는데, 그것 때문에 쉽게 잡혔다. 제임스 조던의 죽음은 마이클 인생의 가장 성공적이면서도 어려웠던 시기 중 하나를 끝마치도록 했다. 마이클과 그의 아버지는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고 제임스는 아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이클은 자신의 밝고 즐거운 성품이 아버지를 닮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임스는 솔직한 사람이었고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그는 아들에게 많은 인생의 교훈을 가르쳤고 그 가운데 하나는 “모든 일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교훈이었다.


그는 어릴적 꿈이었던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잠시 코트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그는 놀라운 기량으로 다시 한 번 여러 개인 기록을 내었을 뿐 아니라 시카고불스팀을 3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면서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시카고불스의 코치인 필 잭슨의 계약이 끝나자 구단주는 현역선수로 뛰지 못 한다는 미국 프로농구의 규정으로 조던은 1999년 1월 13일 다시 한 번 은퇴했다. 그는 다음 한 해 동안 구단주로서 미국 프로농구팀인 워싱턴위자드를 경영한 뒤에 다시 농구코트로 돌아왔다. 마이클의 개인 성적이 어전에 비해 크게 저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2003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농구계를 완전히 은퇴했다. 그는 40세의 나이에 이르러서도 주전 선수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했다.


마이클의 이러한 성적과 기량에 혹평으로 유명한 스포츠 비평가들조차도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마이클 조던은 열다섯 시즌 동안 매 경기 30.12점의 평균 득점 기록을 냈는데 이것은 윌트 챔버레인이 세운 30.06보다 높은 미국 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높은 기록이었다. 시카고불스팀과 함께 마이클은 미국 프로농구 시즌을 여섯 번 우승했고 이 때마다 그는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열 번의 다득 점 상과 시즌 최우수 선수상을 다섯 번이나 수상했을 뿐 아니라 올스타 팀에 별 번 선정되었다. 그는 세 번이나 리그 최다 공 가로채기 상을 받기도 했다. 파울 라인에서 덩크슛을 하는 것이 보여 주듯 그의 도약 능력은 그에게 ‘에어 조던’ 그리고 ‘공기처럼 가벼운 조던’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제임스 조던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신의 아들 마이클에게 남다른 점이 있음을 알았다. 그는 아들과 나눈 친밀한 대화와 유머감각, 그리고 강한 목적의식으로 아들의 이러한 남다른 점을 격려하고 북돋아 주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2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