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아버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열정이 있습니다. 불타는 열정, 거룩한 열정, 쉬지 않는 열정, 비전에 이끌리는 열정, 그 위대한 열정을 품고 아버지로서의 역사를 써 왔습니다. 눈물과 땀을 흘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써 왔던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열정과 헌신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나 홀로 꿈을 꾸면 그것은 단지 꿈으로 끝날 수 있지만,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꿈은 잠을 자야 꾸지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잠에서 깨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남편으로 아버지로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우십시요. 그리고 기도하며 성취를 향해 걸음을 내딪으십시요

인생에서 남자로 태어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취도 중요하지만 존경받는 남편이요,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 비전을 이루어 가도록 빌립보 교회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성일 : 17-03-19 23:55
인생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가르친 아버지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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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표를 추구할 때 인내함으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가르친 아버지


하버트 아론- Herbert Aaron, 연대 미상
헨리 행크 아론의 아버지. 허버트 아론은 자신의 아들 헨리 행크 아론에게 탁월함과 인내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헨리는 23년의 야구선수 경력 동안 755개의 홈런을 치면서 메이저리그 역사에 빛나는 홈런왕이 되었다.


헨리 루이스 아론 행크 아론은 처음부터 야구에 대해 천부적인 소질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행크 아론은 야구 스타 새챌 페이지의 고향인 알라바마주의 모바일에서 1934년 2월 5일 태어났다. 이 날은 베이브 루스의 39번째 생일 하루 전 날이었다. 행크 아론의 아버지인 허버트 아론은 운동 경기를 좋아했지만 미국 남부에서 흑인 선수와 백인 선수가 동등한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흑인 프로야구 선수가 없었다. 조선소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 허버트는 자신의 모든 자녀들에게 토울민빌위펫 동네 야구팀과 함께 경기를 하며 야구를 즐기도록 권유했다.


 「꿈을 좇아서」Chasing the Dream라는 책에서 헨리는 가족을 위해 긴 시간을 고생하며 일하시던 아버지를 통해 인내의 가치와 존경에 대해 배웠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그가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에 다가서면서 핍박과 인종차별에 직면할 때 이러한 가치들은 빛을 발했다.


1840년대 초반 아론의 가족은 모바일 베이 구역의 좁은 빈민가를 벗어나 보다 나은 거주 지역인 토울민빌의 한 이웃 동네로 이사했다. 허버트가 이곳에 땅을 사고 목수들을 고용하여 방 여섯 개 딸린 집을 짓는데는 겨우 200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이 새 집의 벽과 지붕이 다 만들어지자, 아론의 가족은 이사해서 살기 시작했다. 물론 월세나 주택 대출의 염려 없이 말이다. 주택을 소유한 사람만이 부자라고 생각했던 아론의 가족은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역경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베이브 루스와는 달리, 행크 아론은 예절 바르고, 어른을 존경하고, 주일에는 교회가는 것이 당연한, 친밀하면서도 건강한 가정에서 자랐다. 허버트와 그의 아내는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최선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녀들을 양육했다.


행크 아론이 11살이었을 때, 재키 로빈슨은 메이저리그의 피부색의 장애를 뛰어넘으며 브룩클리다저스와 계약을 맺었다. 이것은 행크 아론의 마음에 자신도 언젠가 메이저리그에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큰 꿈을 품게 했다. 허버트 아론은 자신의 아들이 야구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브루클린다저스가 시범 경기를 위해 모바일에 오기 전까지는 자신의 아들이 야구선수가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질 않았다. 그는 어린 행크 아론을 데리고 가서 함께 이 경기를 보았는데, 그날 밤 행크는 아버지에게 재키 로빈슨이 은퇴하기 전에 자신도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행크 아론이 야구선수가 되었을 때에는 이미 십대였다. 행크가 다녔던 학교나 살았던 지역에는 그가 활동할 수 있는 소년야구팀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처음 선수가 되었던 팀은 지방 정부 사회체육과가 후원하는 빠른 공을 던지는 소프트볼 흑인 리그였다. 행크 아론은 종종 학교를 조퇴하고 동네 당구장에 가서 브루클린다저스 라디오 중계방송을 듣곤 했다. 허버트는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무척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내며 꾸짖기 보다는 자신이 가족을 위해 어떤 희생을 하고 있는지를 상기시켜 주었다. 자녀들에게는 점심 값으로 각각 50센트를 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25센트를 써야했다고 말해주었다. 자신이 희생해서 자녀들이 무사히 고등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에 행크는 다시는 학교 수업을 빼먹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바로 그날, 바비 톰슨의 3점 홈런으로 뉴욕자이언츠는 브루클린 다저스를 내셔널리그 페넌트레이스에서 누르고 우승했다. 이날의 두 극적인 사건은 행크로 하여금 더욱 더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은 열망을 키웠다. 이 당시에 선수 스카우터들은 흑인 선수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남부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행크는 흑인 리그를 통해 메이저리그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행크 아론이 16살이었던 어느 날, 한 남자가 그에게 지방의 준프로팀인 모바일블랙베어를 위해 뛰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이 팀은 일요일에 경기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결국 이 제안을 수락했고, 이렇게 그의 프로야구 인생은 시작되었다.


행크 아론은 그 뒤에 흑인 리그의 한 팀인 인디애나폴리스클라운스팀으로 스카웃되었다. 행크의 부모는 기뻐했지만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강권했다. 그때 행크는 입단 제안을 다시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일 년 뒤에 행크 아론은 클라운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 이듬해에 행크 아론은 보스턴브레이브스로 이적되었고 이 팀의 2부 리그팀인 오클레어베어스팀을 위해 뛰었다. 1954년 행크 아론은 외야수 바비 톰슨이 2루에서 슬라이딩을 하다가 발목을 부러뜨린 일이 있은 뒤에 말와키 브레이브스를 이적했다. 그는 스프링 캠프의 첫 게임에서 홈런을 쳤다. 1957년 23살의 나이에 아론은 밀와키가 페넌트레이스에서 우승하고 첫 월드 챔피언십을 거머쥐도록 한 홈런으로 MVP상을 수상했다.


브레이브스 소속이었을 때, 행크는 이전의 홈런 기록들을 갈아 치우기 시작했다. 1960년에는 그는 자신의 200번째 홈런을 쳤고, 1963년에 자신의 300번째 홈런을 쳤다. 1966년에 밀와키브레이브스는 남쪽으로 옮겨 애틀랜타브레이브스가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400번째 홈런을 쳤다. 1968년에 그의 500번째 홈런도 애틀랜타에서 나왔다. 1969년 7월 30일 아론은 자신의 537번째 홈런을 치며 미키 맨틀을 제치고 역사상 최대 홈런타자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이 친 사람이 되었다. 오직 월리 메이스와 베이브 루스만이 그의 앞에 남아 있었다. 아론은 이제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야구팬과 보도매체는 그를 ‘홈런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1971년도에 행크 아론은 자신의 600번째 홈런을 쳤고 이듬해에 월리 메이스의 기록을 갱신하며 역사상 두 번째로 홈런을 많이 친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것을 좋게 보지는 않았다. 인종차별의 내용이 담긴 많은 편지들이 그의 집으로 배달되었다. 경기장 관람석에서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험한 말들이 그에게 쏟아졌다. 일부 스포츠 비평가들은 만약을 대비해서 추모기사를 미리 작성해놓기고 했다. 베이브 루스의 미망인이었던 클레어는 차별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남편은 아론이 자신의 기록에 도전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론은 그런 조롱들을 조용히 그리고 씩씩하게 견디어 내었다. 매일같이 보도매체와 야구팬들이 쫓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아론은 기록을 갱신하는데 심적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53,775명이라는 브레이브스팀 역사상 가장 많은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행크 아론은 로스엔젤레스 투수 알 다우닝을 상대로 4회에서 홈런을 치며 1974년 4월 8일 홈런 기록을 갱신했다. 이 홈런볼은 브레이브스팀의 볼펜에 떨어졌는데, 구원투수 톰하우스가 잡았다. 아들이 신기록을 세우는 홈런을 치자 관람석에 앉아 있던 허버트 아론은 “재가 내 아들이야! 내 아들이라고!” 하며 크게 외쳤다. 행크의 어머니는 축포 소리를 듣자 아들이 총에 맞은줄 알고 아들을 보기 위해 경기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베이브 루스는 행크 아론이 신기록을 세우기 전까지 50년간 역대 최고의 홈런 타자로 군림했다. 경기를 마친 뒤에 행크는 기자들과 팬들에게 신기록을 세우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그는 집에서 무릎을 꿇고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그동안의 보살핌과 돌보심에 감사드렸다. 허버트 아론은 아들에게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과 담대하게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는 아들에게 인종차별과 역경을 견디는 의지의 본보기가 되었다. 행크 아론은 아버지의 한결 같은 성품을 본받아 어디에서나 한결 같았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그는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 가운데 한 사람이자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홈런 타자가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4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