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

아버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열정이 있습니다. 불타는 열정, 거룩한 열정, 쉬지 않는 열정, 비전에 이끌리는 열정, 그 위대한 열정을 품고 아버지로서의 역사를 써 왔습니다. 눈물과 땀을 흘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써 왔던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열정과 헌신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나 홀로 꿈을 꾸면 그것은 단지 꿈으로 끝날 수 있지만,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꿈은 잠을 자야 꾸지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잠에서 깨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남편으로 아버지로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우십시요. 그리고 기도하며 성취를 향해 걸음을 내딪으십시요

인생에서 남자로 태어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취도 중요하지만 존경받는 남편이요,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 비전을 이루어 가도록 빌립보 교회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성일 : 17-02-02 14:13
첫째 하나님, 둘째 가족, 셋째 일의 우선순위를 가르친 아버지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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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D. 허스번드- Col. Rick D. Husband, 1957-2003


로라 허스번드의 아버지. 미 공군 대령 릭 허스번드는 콜롬비아 우주왕복선에서 사망했지만, 자신의 딸 로라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는지를 가르쳤다.



우주왕복선 선장이었던 릭 허스번드와 여섯 명의 승무원들은 콜롬비아 우주왕복선을 타고 우주에서 16일간 보냈다. 아내 에블린이

쓴 릭의 자서전 「높은 소명 : 콜롬비아 우주왕복선 선장의 인생과 신앙」에서 릭은 우주탐사에 앞서서 자신의 딸 로라와 갓난 아들

매튜를 위해 비디오 테이프를 녹화해두었다고 한다. 그는 아내 에벌린에게 “내가 우주 공간에 있는 동안 매일 한 번씩 나를 볼 수

있도록 로라와 매튜를 위해 따로따로 영상 편지를 만들 예정이오. 내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매일같이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릭은 신앙 다음으로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릭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해주는 시간을 가장 즐겼다. 릭에게 하나님은 어떤 희미한 개념이 아니라 살아 계신 인격이셨다.

예수님은 어떤 이야기책의 도덕적인 인물이 아니라 주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릭은 문자 그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셨고,

죽으셨다 다시 살아나셨으며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과 교제를 원한다고 믿었다.



릭 허스번드는 존 글렌이 지구를 도는 것을 보면서 우주비행사의 꿈을 꿈꾸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겨우 4살이었지만 자신의 꿈을

잊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망원경을, 어머니는 장난감 우주비행사 모자를 사주었다. 그는 13살 때부터 부모님에게 비행기

조정훈련을 받게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는데, 17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허락을 받아냈다. 그 당시에 비행훈련에 드는 돈은 1,200

달러에서 1,500달러의 거액이었지만 그들은 아들 릭에게 기꺼이 투자했다. 그는 비행훈련을 잘 마친 다음 항공기 조종사 면장을

취득했다.



1975년 우등상을 받으며 아마릴로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릭은 기계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루벅에 있는 텍사스기술대학교에 진학

했다. 그곳에서 릭은 장차 아내가 될 에벌린 니일리를 만났고 용기를 내어 데이트 신청을 했다. 첫 데이트에서 그는 자신이 공군이

되길 원하며 최종으로는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이 자신의 포부라고 밝혔다. 대학 졸업 후에 그는 공군에 입대하여 조종사가 되었고

비상착륙 훈련과 전투기 조종사 선임훈련을 마친 뒤에 에벌린과 1982년에 결혼했다.



그는 공군에서 시험비행사로 근무하며 칼스테이트대학교에서 기계 공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공부하는 한편, 나사NASA에 우주

비행사 훈련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세 번이나 응시했다. 그러나 매번 떨어졌다. 그때마다 자신이 발탁되지 못 한 것에 대해 실망

하기도 했지만 이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 두었다. 릭의 일기를 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



“비행사가 되기를 원하는 내 바람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물론 나는 계속해서 우주비행사가 되려고

노력하겠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일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이것을 내가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감사하다.”



릭은 영국 공군 월세어의 보스콤브다운과 군장비평가원에서 파견 근무하는 기회를 얻었는데, 이곳에서 그의 믿음은 더욱 깊어졌다.

이전까지 릭에게 하나님은 선하고 사랑 많은 주일학교 교사와 같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영국에서 그의 신앙은 한층 성숙해졌고 더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가 영국에 있을 때, 그의 아버지 더그는 시한부 신장암 진단을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릭은 돌아가시

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텍사스로 돌아왔다. 인생의 무상함을 깨달은 릭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허락하

시면 무엇이든지 성취할 수 있음을 가르치기 원했다. 릭은 그의 자녀들의 잠재력을 믿었고 자녀들이 이것을 알기를 원했다.



자신의 꿈을 하나님께 내려놓은 그는 새로운 관점에서 우주비행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시편 37편 4절의 말씀을 묵상하곤 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이 말씀이 그의 마음에 깊이 닿았다. 그는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주비행사라는 핑계로

가장의 역할을 소홀히 했다면, 가족에게만 상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가족이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지기를 원

했다.


릭은 우주비행사 훈련프로그램에 네 번째 도전을 했고 드디어 발탁되었다. 1995년에 존슨우주센터에서 후보생 훈련을 시작했다.

수료 뒤에 그는 우주왕복선 개선과 승무원 귀한선과 관련된 고등 프로젝트의 대변인이 되었다. 한편 그는 달과 화성으로의 우주

비행을 연구했다. 드디어 1999년 디스커버리호로 잘 알려진 우주비행선 STS-96의 비행사로 우주비행을 했다. 그는 우주에서 235

시간 체류하면서 우주여행이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2003년 2월 그는 우주비행선 STS-107, 즉 콜롬비아호의 선장으로 발탁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콜롬비아호는 28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환하던 중 과도한 열과 마찰로 인해 폭발했다.

이로 인해 콜롬비아호에 탑승한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 나사NASA와 항공 우주 관련 종사자들과 미국과 전 세계가 슬퍼했다.



릭 허스번드는 오래는 아니지만 풍성한 삶을 살았다. 자기 인생의 우선순위를 알았고 그것에 따라 살았다. 후에 아내 에벌린은 남편

릭의 믿음과 우주비행사 생활에 대해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졌을 뿐 아니라 남편의 자서전도 집필했다. 그 책에서 딸 로라는

아버지를 이렇게 회상했다.



“아버지는 정말 사랑이 많으셨어요. 제게 늘 아름답다고 말씀해 주셨지요. 아버지는 정말 신실한 기독교인이셨어요. 제가 4살 때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저는 아버지가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하고 가족을 두 번째로, 그리고

아버지의 일을 세 번째로 정하셨던 것이 얼마나 감사하지 몰라요. 아버지는 정말 겸손하신 분이셨어요. 아버지가 오래 사시지는

못하셨지만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둔 것만으로도 제게는 축복이었습니다. 지금은 슬프지만 저는 언젠가 천국에 계신 아버지를

다시 뵐 것이고, 천국에서는 헤어질 일이 없을 테니 감사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6:5.